역사 전설 야담

현대중국과 대만의 건국 3편

목눌인 2015. 1. 23. 15:09
8.  장개석 독재의 시작

 
192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 대공황은 전 세계를 휩쓸었고
전세계에는 인플레이션과 실업자가 넘쳐나는 등 각국의 경제기반이 뒤흔들리고 있었어
그러다보니 전세계 국민들은 자유보다는 먹고살기에 급급하였고
결국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를 원하는 추세로 바뀌었어

 

1932년 온건파인 이누카이 쓰요시 총리가 우익 해군 장교에게 암살되고
경제 한번 살려 보겠다고 만주사변도 일으키고 중국 본토까지 쳐들어가지
그동안 조선을 더 쥐어 짜고 있었고

 

장개석은 중국빨갱이들이 대장정을 통해 시안으로 도망가자
빨갱이들을 거의 뿌리뽑은것으로 판단하고 내정에 힘을 쏟기 시작하지
그리고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는 반대세력과 국민당내 좌익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해
물론 언론통제까지 단행했고 동족끼리 싸우지 말고 쪽바리와 싸우자는 대학생들의 시위도 무자비하게 진압해
그리고 나치의 SS를 본뜬 장개석친위대이자 비밀경찰인 남의사 (Blue shirt society)란 단체도 설립시킨다.
남의사가 처리한 자가 1년동안 6500명이라 하니 무시무시하노?

 

게다가 장개석은 미개한 정책을 펴댔는데
가장 대표적인게 연좌제 도입이야
동네의 10개 가정을 묶어 한집이라도 빨갱이가 나오는 순간
그 10개 가정은 노짱따라가는거야
게다가 화폐개혁까지 도입하면서 중화민국 경제는 노짱따라가
결국 중화민국의 경제는 4대가문이 쥐락펴락 하게 되지

 

4대가문 보면 1편에서 봤던 송가네 3자매 보이지?
송애령 송경령 송미령 
그리고 송애령이 남편인 공상정 
송미령의 대한민국 건국 훈장이 이력이라면 이력이지
이 여자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뒷돈을 대줬으니까

 

결국 장개석의 이 병신짓은 
이때 까지만해도 6천명에 지나지 않던 모택동의 빨갱이에게 쳐발리고
100만 대군 다 잃고 GG 친다음 대만으로 도망가게 되는 원인이 된다.

 
9. 핵쪽바리들의 난동

1932년 만주사변이 일어난 이후에도 쪽바리들은 계속 국민당정부에게 무력시위를 해왔어
근데 장개석이는 빨갱이 잡느라 혈안이 되어있느라 쪽바리들은 신경도 안썼지
1934년 모택동 빨갱이들의 대장정 기간동안 장개석이는 100만 대군의 대부분을 빨갱이 잡는데 올인하는 바람에
쪽바리는 신나서 중국 동북부 5성(이 안에 베이징도 포함)을 쳐먹었어 
어느 지역인지 대충 설명하자면 삼국지에서 하비전투 당시 조조와 원소와 공손찬의 땅을 다 일본이 쳐먹은거라고 하면 편하겠다.
게다가 1936년 쪽바리 새끼들은 내몽골을 담당하고 있던 장개석 수하의 군벌도 꼬셔서 내몽골지역까지 일본이 쳐먹게 된다.

 

민중들이 이꼴을 보고 가만히 있지 않았지 당시 이념이란 개념 자체를 몰랐던 민중들이니까
자유주의니 빨갱이니 이딴건 관심밖인 상황에서 장개석이는 빨갱이 잡는다고 혈안이 되어있어 
중국 동북부가 쪽바리 손에 넘어가니까 시위를 안하고 못배기는거지
그래서 1935년 12월 전국적으로 장개석은 동족과 싸우지 말라. 일본과 싸우자는 시위가 일어나
하지만 오히려 장개석은 1936년 1월 학생운동 금지령을 내려 
그래도 말을 듣는 민중들이 아니었지. 
이때 모택동은 큰 결단을 내려 민중들을 모두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게다가 모택동 빨갱이새끼들이 도망간 시안은 쪽바리들이 점령한 지역과 경계였으니까
직접 쪽바리들을 공격할 수 있는 스탠스도 갖추어져 있었어

 

1936년 2월 중국 빨갱이들은 항일선봉군을 조직해서 쪽바리들에게 빨갱이식 특유의 게릴라 맛을 보여줘
장개석은 빨갱이가 또 나타났다는 소식에 깜놀해가지고 1936년 5월 빨갱이소탕에 나서
그러자 모택동은 이러다가 쪽바리랑 국민당에게 ㅁㅈㅎ 당하겠다고 생각했는지 또 다시 결단을 내린다
1936년 8월 장개석의 부하인 장학량을 만나서 (장학량 자주나오노?) 
중국에 하나의 공화국이 생기면 중국 공산당은 그 산하에 들어갈 생각이 있다.
당장 우리가 서로 싸울 일이 아니다 손문선생의 삼민주의도 자기네들이 따르는 이념이며
따라서 지금 중국이 공생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힘을 합쳐야 한다는 논리로 제 2차 국공합작을 제의했어

 

장학량은 바로 장개석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국공합작을 하자고 건의하나 장개석은 개무시로 일관하며 
1936년 10월 빨갱이에 대한 총공격 명령을 내렸다. 이 일로 인해 거의 모든 민중이 장개석에게 등돌리게 된다
장개석 멍청하노?

 
10. 시안사변

 
자기 고향인 만주를 버리고 (고향은 쪽바리들에게 좆털리고 있는데)
장개석에 대한 충성심 하나로 빨갱이를 처단하기 위해 시안에 있던 장학량 ㅠㅠ
그때 눈치없이 장개석이 장학량이 제대로 하고 있나 감시하기 위해서 수도인 난징으로 부터 시안까지 날아온다.
그리고 12월 12일 장학량은 역대급 하극상을 벌인다. 장개석을 붙잡아 구금한다.

 

전세계적으로 난리가 났다. 중국의 최고 권력자를 상대로 하극상이 일어났으니 말이다. 
소련에서는 쪽바리 새끼들의 소행이다. 쪽바리 새끼들아 뭣들하는 짓이냐며 쉐도우 복싱했고
쪽바리에서도 소련에서 장학량을 매수해서 벌인 짓이다. 중국을 공산화 하려는 짓이냐? 라며 쉐도우 복싱했다.
중화민국 국민당 남경정부에서도 장개석을 구하러가자, 장개석을 희생시더라도 반란을 진압하자라는 의견으로 분분했고
중국빨갱이들도 잘됐다 이기회에 장개석이 죽여버리자라는 파와 장학량을 꼬셔서 일본을 상대로 같이 싸우자 라는 의견을 나뉘었다.

 

장학량은 장개석에게 권총을 들이밀며 빨갱이들과 합작해서 쪽바리들 처단하자고 협박까지 하는데도 
장개석은 빨갱이들과는 타협할 수 없다 차라리 날 죽여라 라고 버텼어
장학량의 부하들은 어서 빨리 장개석을 죽이고 쪽바리를 치자고 계속 간언했지
이 상황에서 중화민국 국민당 남경정부는 예전 장개석이 명령한 대로 빨갱이들 잡으로 시안으로 진격하고 있었지
이때 모택동이 짱구를 굴려 이러고 있다가는 다 죽겠다 싶은거지. 12월 17일 장개석을 직접 만나러 가는 선택을 해
그리고 장학량에게 장개석을 풀어달라고 간청하고 남경정부에서 날아온 국민당 대표이자 장개석 마누라 송미령을 만나 쇼부를 쳐
장개석은 빨갱이 새끼들 안만나고 뻐팅기고 있었는데 송미령이 직접 찾아와 간청하니 장개석도 남자새끼라 보빨해야 하지 않겠노?
결국 모택동 빨갱이 새끼와 장학량의 요구를 수용해 그런데 합의문서에는 쪽팔리다고 절대 사인 할 수 없다고 뻐팅겼어
그러면서도 남자는 한입가지고 두말하지 않는다. 약속은 절대로 지킨다는 말을 남기고 1936년 12월 25일 송미령과 함께 남경으로 돌아갔어
그리고 장학량은 장개석이 대만으로 도망갈때 같이 데려가서 10년동안 감옥살이 시키고 가택연금한다. 
장학량은 100살넘게 살았는데 90정도에 미국 하와이로 이민가서 살다가 죽었다.

 
11. 제2차 국공합작

 

모택동은 1937년 2월 국민당과의 회의끝에 네가지 조건에 합의해
1. 국민당은 빨갱이를 공격하지 않는다
2. 빨갱이들은 중화민국의 특구로 편입한다 또한 빨갱이군은 국민혁명군(국민당군)의 8로군에 배속한다.
3. 빨갱이들 특구는 보통선거를 통한 민주절차를 확립한다
4. 지주들의 토지 몰수를 금지한다.

 

근현대사 공부하는 게이들 어디서 많이 들어본게 나오지 않아? 8로군 맞아 시발것이야
국민혁명군은 원래 7로군까지 있는데 국공합작에 의해 빨갱이들이 편입되서 8로군이 돼
이 8로군에 김원봉의 조선의용대가 같이 소속이 된다. 그래서 이 8로군은 근현대사에서 언급이 되는거야
사회주의자였던 김원봉은 우선 조국해방이 제1 모토였기 때문에 후일 대한민국임시정부 광복군에도 들어가긴 하지만
결국 조선의용대의 대부분은 북괴군이 되지. 그리고 한국전쟁때 우리 국군장병과 UN군의 상대가 되는 빨갱이 새끼들이야.
몇몇 좌빨새끼들이 그렇게 빨아대는 김원봉과 조선의용대 조선의용군이 이거야

 
12. 중일전쟁 발발 - 루거우차오다리(노구교)사건

 
중일전쟁의 시작은 이 루거우차오 다리에서 시작돼. 이 다리는 베이징 서쪽 10km 정도 떨어져 있는곳에 위치해있는데
이 다리 사이로 국민당군(빨갱이들이 국민당군에 흡수되었으니 앞으로 국민당군으로 표기함)과 쪽바리새끼들이 대치해 있었지
이 와중에 쪽바리 새끼들은 병사 한명이 행방불명 되었다. 국민당 쪽으로 부터 10발정도 사격을 받았다라는 핑계로
1937년 7월 9일에 강을 도하해서 국민당군을 공격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국민당에게 사과 요구와 함께 철수요구를 해
예전 국민당 같으면 빨갱이 잡느라 혈안이 되서 쪽바리 말들 잘 들어줬는데 이번엔 달랐지. 간단하게 좆까! 라는 답을 받았으니까

 

쪽바리새끼들은 당황해서 7월 11일 본토로부터 6만명의 병력을 증원해 조선에서도 1개 사단이 출병했는데 한국인들도 많았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8로군의 한국인과 쪽바리에게 강제 징용당한 한국인, 같은 동족끼리 딴나라 전쟁에서 싸워 댄거지
7월 28일 핵쪽바리들은 대대적으로 총 공격을 감행해 8년동안 벌어진 중일전쟁의 시작이야

 

쪽바리놈들은 중화민국의 수도인 남경에 무차별 폭격을 가하고 전군이 총공격을 감행했지만 
육해공군 총사령관을 자처한 장개석의 전술과 빨갱이들의 게릴라에 막대한 피해를 입어
11월초 상해에 총공격을 감행하여 점령에는 성공했지만 1만명이 전사하는 큰피해를 입었거든
그래서 본국으로 부터 계속된 증원이 이어졌고 총 11개 사단중 2개사단만이 일본 본토와 한반도에 남고
9개 사단이나 중국본토에 몰빵되기 시작해. 그래도 어쨌든 일제의 군세가 강하니까 국민당은 후퇴를 거듭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남경에서 청도(충칭)으로 천도를 해 그리고 남경에서는 짱깨 민족 최대의 비극이 펼쳐진다.

 
13. 남경대학살 (약혐짤 포함되어있다.)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내려던 쪽바리들의 속셈은 장개석의 버티기와 모택동의 게릴라로 인해 이루어지지 못했지
이미 상해까지 내려온 쪽바리들은 긴 보급선을 제대로 운용하지 못했고 보급에 차질이 생기기도 했어
그래서 식량 아깝다고 국민당 포로들 다 죽여버림 ㅋㅋㅋㅋㅋㅋ 시발 쪽바리 국민성 보소
쪽바리들은 진정한 그들만의 종특을 발휘해 중화민국의 최대도시 난징을 쑥대밭으로 만들기로 작정한거야

 

12월 13일 중화민국의 수도였던 남경을 함락한 쪽바리들은 16일까지 30만명의 민간인을 학살해
반면 현재까지 쪽바리 새끼들은 30만명은 중국쪽의 개소리 라며 모로쇠를 시전하지
이후 쪽바리 새끼들은 전쟁에서 이기려면 중화민국의 대도시를 공략해야 한다는 방침을 세워
그리고 장개석의 중화민국 국민당을 부정하기 위해 점령한 북경 상해 남경등에 만주국과 같은 괴뢰정부를 세워

 

장개석이 좆된거지. 중국빨갱이새끼들은 소규모 도시에 숨어서 게릴라짓을 해댄 반면
장개석의 국민당군은 정규군으로서 대도시들을 지키고 있었거든
중국 빨갱이들은 빈집러쉬나 게릴라 짤짤이로 이득보는 한편
장개석이는 쪽바리들의 한타병력을 그대로 맞상대해야 하니까
이는 나중에 2차 국공내전때 장개석에게 크나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14. 완난사건 - 국공분열

 
중일전쟁이 거듭되고 1940년으로 들어서는 시점에 
모택동의 빨갱이군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강대해지고 있었어
아까 국민당군은 대도시에, 모택동의 빨갱이군대는 소규모도시에 위치해 있었다고 했지?
빨갱이군대는 모택동의 선전술로 시골의 농민들을 매료시키고 병력을 늘려갔던거야
6천명이던 빨갱이군은 1940년에 8로군 40만, 신4군이 10만이나 되는 병력으로 강대해져
그리고 1940년 8월에 8로군 40만군이 쪽바리군에 몰빵하여 대승을 거둬 이를  백단대전이라 한다

 

장개석은 빨갱이군의 대활약에 오줌을 질질싼다. 이대로 놔뒀다가는 후에 있을 내전에서 ㅁㅈㅎ 당할것 같았거든
그래서 빨갱이군대중 10만 병력의 신4군에게 양쯔강 이북으로 북상할 것을 명령해
이는 쪽바리 점령지역이었고 후방에는 양쯔강이 있으니 배수의 진을 치도록 명한거야 그냥 가서 뒤져라 이뜻이지
좌우합작 합의후 모택동에게 장개석은 실질적인 상관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명령에 따른다.
그리고 쪽바리 군대랑 전투를 벌이는데 생각보다 잘버틴단 말이야?
여기서 장개석의 졸렬함이 시전된다. 빨갱이 군대 신4군 선봉군 9천병력 후방에서 국민당군이 기습을 가해 
빨갱이군대가 궤멸당한것이다. 이를 완난사건이라고 한다.

 

이 완난사건으로 9천명의 선봉대중 2천명정도밖에 살아남지 못했고
살아 돌아온 빨갱이 신4군 지휘관 에팅이 장개석에게 항의하자
장개석은 에팅을 군법회의에 회부시켜 쳐형하고 국민당군 내에 신4군을 해체 시킨다
빡친 빨갱이군은 나머지 9만병력으로 신4군을 재건하여 장개석에게 맞서게 되고
장개석의 이 졸렬함 덕분에 민중들은 또다시 장개석에게 등을 돌리게 된다.

 

쪽바리가 이렇게 동아시아에서 설치고 다니는걸 보기 좋아하는 열강은 없을것이다.
그래서 천조국은 쪽바리를 대상으로 고철과 석유 수출을 금지시키는 대처를 한다.
전쟁에서 고철과 석유는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한반도와 같이 지하자원이 전무한 일본열도 특성상
고철과 석유를 얻지 못하는건 전쟁을 수행할 수 없다는것을 뜻하고
미국이 쪽바리를 좌지우지하는 꼴이 된것이다. 이에 쪽바리 새끼들은 자존심이 무척이나 상하지
그래서 사고를 친다. 그 유명한 진주만 폭격. 그렇게 태평양 전쟁이 시작된다.
장개석은 쪽바리 새끼들이 태평양전쟁을 발발시키자 눈치 빠르게 일제에 대대적 선전포고를 하고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이 소속된 연합군의 일원이 된다. 하루 아침에 열강의 반열에 오른것이다.
게다가 중국에 몰빵했던 쪽바리가 태평양전쟁때문에 병력을 동남아와 태평양쪽으로 돌리니
드디어 장개석에게 빨갱이를 때려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