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

우리가곡 모음곡

목눌인 2015. 2. 8. 20:15


1. 고향그리워 - 만향 시 / 이흥렬 곡
2. 또한송이 나의모란 - 김용호 작사 / 조두남 곡
3. 님이 오시는지 - 박문호 시 / 김규환 곡
4. 어머니의 마음 - 양주동 시 / 이흥렬 곡
5. 봄이오면 - 김동환 시 / 김동진 곡

6. 장안사 - 이은상 시 / 홍난파 곡
7. 거문도 뱃노래 - 전통민요
8. 사공의노래 - 함호영 시 / 홍난파 곡
9. 산들바람 - 정인섭 시 / 현제명 곡
10. 청산에 살리라 - 김연준 시 / 김연준 곡

11. 별 - 이병기 시 / 이수인 곡
12. 내마음 - 김동명 시 / 김동진 곡
13. 동심초 - 설도 시 / 김성태 곡
14. 산골짝의 등불 - 미국 민요 / 진태권 편곡
15. 떠나가는배 - 양중해 작사 / 변훈 곡

16. 보리밭 - 박화목 시 / 윤용하 곡
17. 그집앞 - 현제명 시 / 이은상 곡
18. 내맘의 강물 - 이수인 시 / 이수인 곡
19. 초 우 - 박춘석 시 / 박춘석 곡
20. 봉선화 - 김형준 시 / 홍난파 곡

21. 수선화 - 김동진 곡 / 김동명 시
22. 눈물이 없는곳 - 국립합창단

한국가곡"歌曲"이란 무엇인가?

한국가곡의 역사는 창가(唱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19세기 말부터 1910년에 이르는 시기의 한국 민족의 역사를 살펴보면 근대적 강대국들의 약소민족, 후진국에 대한 침략적 야심으로 인하여 당시 조선은 그들 강대국들의 이권을 위한 시장과 같은 상황이었다. 조선은 그것에 대항하고 견제할 만한 힘을 갖지 못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속에서 우리민족은 무지에 대한 자각과 국권회복을 위한 독립정신이 싹트게 되었고, 창가는 이러한 조국의 자주독립에 대한 열망을 표현하려는 욕구에 의해 탄생되었다. 또한 창가는 악보화되기 보다는 구전으로 많이 불리어졌고, 전문적 시인이 아니라 일반지식인, 또는 민중의 지도자층이 많이 창작하였으며, 교회의 예배용 찬송가로부터 사회참여라는 세속적 요소를 내포한 음악으로 발전하는데, 초기의 창가는 작곡자 개인의 사상이나 감정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이미 일반사회에 알려진 것을 대변해서 노래했으나 차츰 작곡가 개인의 감정을 노래하게 되었다.

1910年 김인제의 〈漂母歌〉에서 시작된 창가는 1920年대에 이르러 이상윤 등의 활동으로 창가의 전성시대를 맞이하였다. 이와 동시에 새로운 가곡이 출현하게 되었다. 즉, 가곡의 개화는 김형준의 詩에 선율을 담은 홍난파의 〈봉선화〉로 1920년대 초에 작곡 발표되었다. 〈봉선화〉는 비록 초기창가와 다름없는 4.4조의 노래이지만, 그 내용의 상징성은 창가의 직설적인 것에 비해 훨씬 예술적으로 승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로써 종래의 창가는 가곡으로 발전되었다.

1920년대 부터 흘러온 한국 가곡의 역사를 정리하면 1920년대는 개화기, 1930년대는 서정적 가곡기, 1940년대는 예술가곡기, 1950년대는 과도기, 1960년대는 현대가곡기에 해당된다. 양식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크게 3세대로 나눌수 있는데, 1920-30년대를 1세대, 1940-50년대를 2세대, 1960년대 이후를 3세대라고 한다.

1세대에 해당되는 가곡을 살펴보면, 1920년대에는 민족주의적이며 계몽주의적 가곡이 많이 작곡되어 졌는데, 홍난파의 "봉선화", 박태준의 "님과 함꼐", 현제명의 "고향생각"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1930년대에는 근대적 감각을 지닌 서정적 가곡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현제명은 민족적 사명을 고취시키는 작곡집 제 1집 "조선(1931)"을 발표하였고, 조두남은 "선구자", "제비", "산" 등의 가곡을 발표하여 서정적인 가곡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김동진은 "가고파", 이흥렬은 "코스모스를 노래함" 등의 아름다운 서정적 가곡을 발표하였고, 1936년에 김세형은 "먼 길"이라는 획기적이고 새로운 형식의 연가곡을 발표하였다.

2세대에 해당되는 1940-50년대의 가곡들은 통절형식이 나타나고, 작곡가의 자유로운 발상에 근거를 둔 예술가곡이 출현하였다. 특히 40년대에는 보수적 경향과 진보적 경향을 추구하는 작곡가가 공존하였다. 김동진은 "내마음(1940)", "수선화(1941)" 등의 자유로운 악상전개와 표현양식의 서정적, 낭만적인 가곡을 발표하였다. 김성태는 "동심초(1945)", "산유화(1946)" 등을 발표하였는데, 그의 가곡은 서정적인 선율진행으로 산뜻한 악상을 추구하고 있다.

위에서 열거한 작곡가들의 작품, 특히 해방전의 가곡들은 일본식민정책 아래에서 그들의 음악적인 발아(發芽)를 예술적인 관점에서 견주기에 앞서 민족적인 불행한 심사를 가락에다 실었기 때문에 가곡은 비애와 감상에 젖어 한탄조의 구슬픈 음조에서 헤어나지를 못하였다. 그러나 8·15 해방 이후 활발한 문예활동과 더불어 가곡에도 새바람이 불어왔다. 작곡가들은 공통된 세대의 의식에서 자신의 내재된 생명을 연소시키는 활성화된 음악어법으로 서서히 대치되어 나갔다. 작곡가들은 짙은 낭만이나 달콤한 영탄조의 가락에서 벗어나 보다 우리것에 대한 애착과 자아에 대한 소중한 갈망을 앞세우는 의식으로 전환해서 가곡들을 창작했다. 윤용하의 "민족의 노래", "보리밭", 이호섭의 "울음", 조 념의 "보리피리" 등의 예술적가곡이 해방과 더불어 발표되었다.

다음은 일본제국주의 음악문화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음악의 실재를 이루는 요소를 의도적으로 표상시켜 민중·민족에게 상호 의사소통시킴으로써 민족의 의미를 부각시킨 민족음악가들 중 월북음악가 김순남과 이건우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김순남은 월북이전에 가곡집 〈산유화1947〉, 〈자장가1948〉를 발표하였다. 그의 가곡의 음악적인 특성을 살펴보면 선율은 대개가 민요풍이었으며, 음계는 5음음계에 반음계적 변화를 주어 근대적 색채감을 더하거나 7음음계의 요소를 자주 사용하였다. 또한 조성은 무조성적인 경향이 뚜렸하였고, 4도화성이나 부가화음을 즐겨 사용하였다.

이건우는 1948年 가곡집 〈금잔디〉를 발표하였다. 그의 가곡은 김순남의 가곡보다 훨씬 더 민요적이다. 선율은 완전4도, 완전5도, 단3도 등 전통음악에 사용되었던 선율을 사용하였고, 민요적 음계와 리듬을 사용하였다. 조성과 화성은 종지에 있어서 간간이 3화음 음정이 나타나는 정도일 뿐 그 외에는 선법적인 화성과 4도화성등으로 기능 화성적 진행을 피하고 있다.

1949년에 발표된 윤이상의 가곡집 "달무리"에서는 민속적인 장단과 5음음계 등의 한국적인 분위기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다루고 있다. 1950년에 발표된 나운영의 "접동새"는 한국 현대가곡의 지표라고 볼 수 있는 우수한 작품 중의 하나로써, 그는 소월시의 운율을 중시하여 남도의 판소리를 의식한 낭송적인 율창과 6/8의 굿거리 장단으로 감각적인 향토색을 추구하여 민족적인 얼을 담은 민족주의적 가곡을 발표하였다.

1955년에 발표된 이호섭의 "국화옆에서"는 반음계기법을 사용한 근대적인 색채를 엿볼 수 있다. 그 이후 3세대에 해당되는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12음기법의 가곡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김달성은 "진달래꽃(1960)"을 통하여 음열에 의한 선법이나 다양한 전조기법등으로 현대적인 수법을 가곡에 사용하였는데, 나운영의 "수수께끼", 윤용하의 "달밤", 조념의 "꽃초롱"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상근의 가곡집 〈아가1969〉에서는 자유로운 조성 취급과 임시기호와 변화음을 사용하여 다소 무조적인 경향을 엿볼 수 있다.

한국 최초의 가곡 "봉선화"가 발표된 192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가곡은 꾸준히 발전하여 왔다. 8·15해방은 "음악창작에 있어서 민족성의 추구"라는 한국음악에 획기적인 기회를 제공하였다. 가곡은 나운영을 선두로 구두회, 김동진, 김성태, 김진균, 조두남 등이 중심이 되어 국민적 색채를 강조한 민족적 가곡을 많이 발표하였다.

이들은 한국적 특징을 가장 순수히 간직하고 있는 한국민요의 특징을 서양의 작곡기법에 결합시켜 한국 특유의 가곡을 정립시킨 선구자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서양음악의 요소에다 한국음악의 요소를 접목시키려는 작곡가들의 시도는 매우 바람직한 것으로 계속적인 전망을 예시해 주고 있다.

가곡이란 그 나라 민족 정서와 예술성이 짙게 밴 고유의 성악곡을 말한다. 모국어로 된 詩(시)를 노래말로 한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몇 나라 안되는 희귀한 전통이다. 한국 가곡이 독일, 이태리 가곡과 구분되는 것은 물론 한국어, 한국 詩를 노래말로 한다는 점이다. 비록 서양 음악의 구조와 원리 를 따랐지만, 외형미를 추구하는 서양 음악과는 달리 우리 가곡은 안으로 녹아들고 餘音(여음)에서 우러나는 우리 특유의 정서가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 가곡은 단순한 음악장르의 차원을 넘어 민족의 노래로서 그 시대의 喜怒哀樂(희노애락)을 같이 해왔다.

月刊朝鮮은 「작곡가, 성악가들이 뽑은 최고의 가곡, 작곡가, 성악가」를 주제로 지난 12월 말부터 설문조사에 들어갔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의 도움 을 받아 음악계를 대표하는 작곡가와 성악가 1백명(관련 분야의 평론가와 방송인 일부도 포함되었다)을 선정하고 「우리 시대 최고의 가곡 세 편, 작 곡가 세 명, 성악가 세 명을 추천하고 이유를 간략히 밝혀달라」는 내용으 로 전화와 팩스를 통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와 달리 엄정한 가치평가를 기대했고, 아울러 음악인들 사이에 한국 가곡에 대한 관심을 喚起(환기)하는 동시에 自省(자성)의 계기가 되기를 바랐다. 조사과정은 수월하지 않았다. 「최고」라는 말이 불러일으키는 거부감이 크 고 최고에 대한 저마다의 기준이 달라서 거듭된 보충 설명과 설득이 필요했 다.

결국은 작품성과 대중성, 가곡史(사)적 의의, 「한국 가곡」으로서의 正體性(정체성) 등이 복합적인 기준으로 설정되었다. 예술 분야 종사자들의 녹록치 않은 자존심, 이름 걸고 하는 일에 있어서의 신중함 또한 난관이었다. 自薦(자천)은 가급적 삼가달라고 했으나 스스로를 「최고」라 자부하는 분 들은 굳이 자신의 이름을 올리기도 했고, 프로필을 끼워달라는 주문, 인용 은 하지 말아달라는 주문이 더러 있었다. 「개인적 취향을 말한다면 몰라도 최고를 꼽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응답을 거부한 분들도 있었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친 결과, 작곡가·성악가들이 뽑은 우리 시대 최고의 가곡은 「 가고파」, 최고의 작곡가는 金東振(김동진), 최고의 성악가는 吳鉉明(오현명)씨로 선정되었다.

음원출처:http://cfile283.uf.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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