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목눌인 2016. 2. 15. 10:13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 앤드류 포터 지음 | 노시내 옮김 | 마티336쪽 | 1만6000원

#1. 2006년 월마트는 유기농 식품을 일반 식품보다 10%만 높은 가격에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건강하고 윤리적인 상품을 저렴하게 판매하겠다니 이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가. 그런데 놀랍게도 기존 유기농 구매자들의 반응은 대다수가 부정적이었다. 그들은 '저렴한 유기농'에서 '더 비싼 로컬 푸드'로 갈아탔다. 명분은 월마트의 유기농이 대규모 공장식 생산을 답습할 거라는 편견과 예단.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유기농이 '특권적 지위'를 상실했다는 판단 아니었을까.

#2. 수퍼모델, 바비인형으로 대표되는 미(美)의 기준을 비판한 미국 여성학자 나오미 울프의 지론은 다음과 같다. 더 예쁘고 덜 예쁜 여자가 있는 게 아니라 중요한 것은 '참된' 개성. 2008년 모로코를 여행하던 울프는 여성의 몸을 가리는 이슬람 전통 의상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아, 히잡·부르카·차도르는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서구의 시선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자유의 상징이구나. 울프는 이를 찬양했고, 당연히 바가지로 욕을 먹었다. 특히 이슬람 여성으로부터. 선택할 권리가 없는 우리의 비참한 처지를 아느냐고.

#3. 세 살배기 아들을 둔 프랑스의 엔지니어 르마송은 2008년 결단을 내렸다. 타락한 현대사회, 천박한 대중매체, 무의미한 소비주의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을 찾겠다고. 그는 정부의 획일화된 교과과정으로 자기 아들을 교육시키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집을 판 돈으로 요트를 사서 탄자니아 해안 잔지바르 제도로 온가족이 떠났다. 주변에선 말렸다. 소말리아 해적이 출몰하는 무법천지 바닷길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이다. "해적 따위가 꿈을 꺾을 수는 없다"며 그는 강행했고, 해적은 그의 꿈을 꺾었다. 프랑스 정부 특공대가 구출 작전에 나섰지만, 총격전 도중 르망송은 사망했다.

캐나다의 젊은 철학자 앤드류 포터(44)의 '진정성이라는 거짓말'은 "진정성이라면 진절머리가 난다"는 냉소주의자들의 열광과 환호를 이끌어낼지 모른다. 하지만 포터의 1차 설득 대상은 소비 자본주의와 타락한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진심'을 만병통치약으로 착각하는 '순진한 진정성주의자' 들이다. 전작(前作) '혁명을 팝니다'(토론토대 철학과 조지프 히스교수와의 공저)를 통해 진보 이미지만을 소비하는 할리우드 좌파를 공격했던 그는 이제 '진정성'이라는 우리시대 또 하나의 허상(虛像)을 체계적으로 비판한다.

위선의 향연으로 변질한‘진정성’의 사례들. 유기농은 품질이 같은 식품을 비싸게 사게 하는 것이 되기 일쑤고, 진실한 전통문화라지만 내국인은 쳐다도 보지 않는다. 진품만을 고집하는 행위는 결국 과시용 지위 경쟁이며, 진실만을 말하겠다는 정치인들의 발언은 자주 거짓으로 드러난다. /그래픽=마티 제공
이 책의 부제는 '진정한 나를 찾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 이유'. 다들 진정성 있는 삶을 추구한다고 주장하는데, 우리 주변에는 왜 이리 진정성 없어보이는 것들만 가득한 걸까. 또 모두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면, 그 결과 빚어질 혼란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이 아이러니에 대한 포터의 대답은 입체적이며 근원적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목소리 높였던 장 자크 루소(1712 ~1778) 이래, 현대인들의 '진정성 열풍'은 결국 근대가 낳은 소외, 불안, 환멸 때문이라는 것. 세속주의·자유주의·시장경제가 낳은 이기심과 경쟁의 현대 사회를 보라. 그러다보니 다들 옛날이 좋았다고 추억과 감상에 젖는다. 마치 이 '지옥'을 치료해줄 최후의 보루인 것처럼 너도나도 진정성 경쟁에 뛰어든다.

하지만 주변을 보라. 유기농은 이제 같은 품질 식료품을 비싼 가격에 사는 바보짓이라 야유받기 일쑤고, 정치인의 진심은 실수투성이 어릿광대를 보는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진짜 나를 보여주겠다는 현대인의 진심은 SNS상의 사생활 노출경쟁으로 추락하기 십상이고, 하루에 1인당 250달러를 내야 하는 부탄 관광은 '진정성 찾기'가 아니라 과시용 지위경쟁과 새로운 명품여행의 최전선일 뿐이다. 여기서 그치면 그래도 다행이다. 진정성 추구가 극단에 이르면 테러리즘 옹호와 공산주의 부활까지도 선언할 기세다. 이슬람 극단주의, 동유럽 일부의 파시즘 회귀 움직임이 그가 들고 있는 예다.

포터는 '근대'와 화해할 것을 용기 있게 제안한다. 얻은 것도 있고, 잃은 것도 있지만, 총체적으로 봤을 때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퇴행이라는 것. 근대의 삶이 아무리 암울해도, 수명과 건강 향상, 공기나 물의 청결, 상하수도, 난방, 전기, 의료, 텔레비전, 인터넷 서비스의 보편화를 떠올려 보라. 평균적으로 현대인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진보했다. 소외와 소득 양극화는 극복해야 할 자본주의의 폐해지만, '진정성'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이다.

그래도 진정성과 진심을 포기하지 못하겠다고? 물론 이 어휘 자체에는 죄가 없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정직해보라. 그동안 겉멋과 우월감으로 이 윤리적인 어휘를 오용, 남용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선의를 지닌 다수를 구렁텅이로 인도하지는 않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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