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전설 야담

터키가 형제국인 이유

목눌인 2014. 3. 13. 10:10

터키가 형제국(兄弟國)인 역사(歷史)아십니까?

'터키'라는 국가(國家)를 말하면 우리는 이스탄불, 지중해(地中海)의 나라, 형제(兄弟)의 나라 등 여러 수식어(修飾語)를 떠올리지만 정작 우리나라와 터키가 왜 '형제(兄弟)의 나라'라고 불리는지 그 이유(理由)를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理由)를 아느냐 물으면

대부분(大部分)의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6.25 때 미국(美國),영국(英國),캐나다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병력(兵力)을 파견(派遣)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고.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사실(事實)은 파병(派兵)된 15,000명이 넘는 터키군 대부분(大部分)이 자원병 이였으며 그중 3,500명이 사망(死亡)(미국(美國)다음으로 많은 사상자(死傷者)할 정도(程度)로 그들이 열심(熱心)히 싸웠다는 사실(事實)입니다.

그렇다면'왜?'그렇게 많은 병력(兵力)을 파견(派遣)했으며,'왜'그렇게 목숨을 걸고 싸웠을까요.

터키에 가면 관공서(官公署)나 호텔의 국기(國旗)대에 터키국기(國旗)와 태극기(太極旗)가 나란히 게양(揭揚)되어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大部分)의 터키인들 역시(亦是)한국인(韓國人)에게 굉장(宏壯)히 우호적(友好的)이며, 그들은 모두 한 결같이 대한민국(大韓民國)'코리아'를 Brother's country라 부릅니다. 또, 한국(韓國)말과 비슷한 단어(單語)가 많은 헝가리사람들 역시(亦是)한국(韓國)이랑 헝가리랑 sister다 라는 얘기를 합니다.

이게 대체(大體)무슨 말일까요.

여기, 한 아침라디오방송에서 나온 이야기를 잠시 참고(參考)해 보도록 하지요.

터키인들은 자신(自身)들의 나라를'투르크'라고 부른다. 우리가 코리아를'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고 하는 것처럼. 역사(歷史)를 배웠다면 과거(過去)고구려(高句麗)와 동시대(同時代)에 존재(存在)했던'돌궐'이라는 나라를 알고 있을 것이다. 투르크는 돌궐의 다른 발음이며 같은 우랄알타이계통이었던 고구려(高句麗)와 돌궐은 동맹(同盟)을 맺어 가깝게 지냈는데 돌궐이 위구르에 멸망(滅亡)한 후, 남아있던 이들이 서방(西方)으로 이동(移動)하여 결국(結局)후에 오스만 튀르크제국을 건설(建設)하게 된다.

원래(元來),나라와 나라 사이엔 영원(永遠)한 우방(友邦)도, 영원(永遠)한 적(敵)도 없는 법(法)이지만 돌궐과 고구려(高句麗)는 계속(繼續)우호적(友好的)이며 친밀(親密)한 관계(關係)를 유지(維持)하며 서로를'형제(兄弟)의 나라'라 불렀고 세월(歲月)이 흘러 지금(只今)의 터키에 자리 잡은 그들은, 고구려(高句麗)의 후예(後裔)인 한국인(韓國人)들을 여전(如前)히, 그리고 당연(當然)히'형제(兄弟)의 나라'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즉,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형제(兄弟)의 관계(關係)였던 것이다.

6.25 때부터가 아니고

그렇다면 의문(疑問)점 하나. 우리는 왜 이 사실(事實)을 모르고 있었을까? 그리고 터키인들은 왜 아직도 우리를 형제(兄弟)의 나라라고 부를까? 답(答)은 간단(簡單)하다. 역사교과서(歷史敎科書)의 차이다.

우리나라의 중(中),고(高)역사교과서(歷史敎科書)는'돌궐'이란 나라에 대해 단지 몇 줄만 할애(割愛)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돌궐이 이동(移動)해 터키가 됐다느니 훈족이 이동(移動)해 헝가리가 됐다느니 하는 얘기는 전무(全無)하다.

터키는 다르다. 오스만 튀르크제국을 경험(經驗)했던 터키는 그들의 역사(歷史)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學校)에서 역사과목(歷史科目)의 비중(比重)이 아주 높은 편이며 돌궐시절의 고구려(高句麗)라는 우방국(友邦國)에 대한 설명(說明)역시(亦是) 아주 상세(詳細)하다.'형제(兄弟)의 나라'였다는 설명(說明)과 함께.

그래서 대부분(大部分)의 터키인들은 한국(韓國)을 사랑한다.

설령(設令)한국(韓國)이 그들을 몰라줄지라도 실제(實際)로 터키인들은 한국인(韓國人)들 역시(亦是)도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인(韓國人)들도 터키를 형제(兄弟)의 나라 라 칭(稱)하며 그들을 사랑할 것이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실상(實相)은 그렇지 못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터키의 한 고위층관계자(高位層關係者)가 한국(韓國)을 방문(訪問)했다. 자신(自身)을 터키인이라 소개(紹介)하면 한국인(韓國人)들에게서 큰 환영(歡迎)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은데 대해 놀란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었다.

'터키라는 나라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돌아온 답(答)은 대부분(大部分)'아니오!'였다. 충격(衝擊)을 받고 터키로 돌아간 그는 자국신문(自國新聞)에 이런 제목(題目)의 글을 기고(寄稿)했다 한다.

'이제 짝사랑은 그만합시다.'

이런 어색한 기류(氣流)가 급반전(急反戰)된 계기(契機)는 바로 2002 월드컵이었다. '한국(韓國)과 터키는 형제(兄弟)의 나라, 터키를 응원(應援)하자'라는 내용(內容)의 글이 인터넷을 타고 여기저기 퍼져나갔고 터키 유학생(留學生)들이 터키인들의 따뜻한 한국(韓國)사랑을 소개(紹介)하면서 터키에 대한 한국인(韓國人)들의 관심(觀心)이 증폭(增幅)되게 되었다. 6.25 참전(參戰)과 올림픽 등에서 나타난 그들의 한국(韓國)사랑을 알게 된 한국인(韓國人)들은 월드컵을 치르는 동안(同案)터키의 홈구장과 홈팬들이 되어 열정적(熱情的)! 으로 그들을 응원(應援)했다.

하이라이트는 한국(韓國)과 터키의 3,4위전

자국(自國)에서조차 본 적이 없는 대형(大形)터키국기가 관중석(觀衆席)에 펼쳐지는 순간(瞬間)TV로 경기(競技)를 지켜보던 수많은 터키인들이 감동(感動)의 눈물을 흘렸다 한다. 경기(競技)는 한국선수들과 터키선수들의 살가운 어깨동무로 끝이 났고 터키인들은 승리(勝利)보다도 한국인(韓國人)들의 터키사랑에 더욱 감동(感動)했으며 그렇게 한국(韓國)과 터키의'형제애(兄弟愛)'는 더욱 굳건해졌다.

우리는 이유(理由)를 알아야 한다.

터키가 형제(兄弟)의 나라가 된 궁극적(窮極的)인 이유(理由)를 모르면 KBS의 어느 아나운서가 패널이었던 터키인에게'아우님'이라 불렀던 어리석은 짓도 가능(可能)한 것이다. 형제(兄弟)는 '형(兄)과 동생(同生)'을 따지자는 말이 아니다. 그들에게 형제(兄弟)는 곧 친구(親舊)며 우방(友邦)이니까.
-------------------------------------------------------------
유럽으로 남진(南進)하려하는 러시아의 힘을 얻어 루마니아와 세르비아가 독립(獨立)을 하게 되고 오스만터키의 아르메니아영토 대부분(大部分)을 러시아가 차지하는 셈이 되자 이에 분노(憤怒)한 투르크인들이 러시아와 붙어먹은 아르메인들을 표적(標的)으로 인종청소(人種淸掃)라는 대학살(大虐殺)을 감행(敢行)한거죠.

1차대학살(一次大虐殺)20년 후 또 다시 오스만터키정부의 도움을 받은 투르크이슬람교도들은 아르메니아인 5만 명에 대학살(大虐殺)을 자행(恣行)합니다.[2차대학살(二次大虐殺)]게다가 적(敵)이 학살(虐殺)된 아르메니아인외 175만 명을 추가(追加)로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로 추방(追放)하고 그 추방(追放)하는 과정(過程)에 60만 명이 사막(沙漠)에서 목숨을 잃게 됩니다. (1894년~1915년까지 25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은 겨우 30만 명만이 살아남게 됩니다.)

그 후 1912년 발칸전쟁(戰爭)때

몬테니그로, 불가리아, 그리스가 오스만! 터키에서 독립(獨立)할 때도 알게 모르게 러시아가 개입(介入)하여 아르메니아인을 도와줍니다. 따라서 러시아가 북한(北韓)을 지원(支援)하기 때문에 당연(當然)히 터키는 그 반대(反對)쪽인 남한(南韓)에만 병력(兵力)을 파견(派遣)한거지요.

물론(勿論)혹자(或者)는 당시(當時)터키가 미국(美國)과의 우방적(友邦的)연계(連繫)로 말미암은 국제적(國際的)이득(利得)을 노린 선택(選擇)일 분이였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역사(歷史)의 흐름이라는 큰 범주(範疇)에서 바라본다면, 터키가 2차 세계대전(世界大戰)때 우리의 동맹국(同盟國)중의 하나였던 이유(理由)가 필연적(必然的)으로 러시아와 적대관계(敵對關係)일 수밖에 없는 과거사(過去事)때문 이였다고 보는 게 타당(他黨)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형제(兄弟)의 나라

한국(韓國)의 경제성장(經濟成長)을 자기(自己)일처럼 기뻐하고 자부심(自負心)을 갖는 나라, 2002년 월드컵터키 전(戰)이 있던 날 한국인(韓國人)에게는 식사비(食事費)와 호텔 비를 안 받던 나라 월드컵 때 우리가 흔든 터키국기(國旗)가 터키에 폭발적(爆發的)인 한국(韓國)바람을 일으켜 그 후 터키수출(輸出)이 2003년 59%, 2004년 71%나 늘어났다는 KOTRA 통계(統計)가 있습니다.

이런 관계(關係)를 지닌, 자기(自己)나라로부터 수백만리(數百萬里)떨어진 곳에서 보내는 의리(義理)와 애정(愛情)을 받는 나라가 세상(世上)에 몇이나 되겠습니까.

역사(歷史)를 좌지우지(左之右之)하는 대부분(大部分)의 위인(爲人)들은 평생독서(平生讀書)를 즐겼으며, 그들이 가장 즐겨 읽었던 분야(分野)는 역사(歷史)라고 합니다.

우린 세계사(世界史)를 떠나 국사(國史)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관심(觀心)이나 있을까요. 아니, 제대로 된 우리의 국사(國史)나 현대사(現代史)를 과연(果然)배운 적이나 있었나요. 내 나라 역사(歷史)조차 바로알지 못하면서 남의 역사(歷史)를 논(論)했던 제 모습에 한(恨)없는 부끄러움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