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사진·추억

서 울 성 곽

목눌인 2012. 7. 23. 10:57

서 울 성 곽

 

*. 문화재 : 4대문(동쪽 흥인문(興仁門),서쪽 돈의문(敦義門),남쪽 숭례문(崇禮門),북쪽 숙청(肅淸門),

            사적제10호 서울성곽

*. 內四山 :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 ; 주산인 북악산우백호 인왕산*좌청룡 낙산

 

*. 성곽개요 : 서울성곽은 서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의 도성(都城)

 

태조(太祖)는 한양 천도 후 일차로 궁궐과 종묘를 먼저 지은 다음 태조 4년(1395) 9월 정도전(鄭道傳)에게

    명하여 성터를 살피게 한 바, 정도전은 백악(白岳)·인왕(仁王)·목멱(木覓)·낙산(駱山)에 올라

    실측하여 네 산을 연결하는 5만 9,500척의 성터를 결정하였다.

 

    1396년 정월부터 전국에 걸쳐 무려 11만 8,000여명이 동원되어 600척을 한 단위씩으로,

    축성구역을 97지구로 나누어 정하였다.

 

    1396년 가을에도 8만명의 정부(丁夫)를 동원했고, 4대문과 4소문을 완성하였다.

    4대문 ; 동쪽 흥인문(興仁門),서쪽 돈의문(敦義門),남쪽 숭례문(崇禮門),북쪽 숙청문(肅淸門).

    4소문 ; 동북 홍화문(弘化門),동남 광희문(光熙門),서북 창의문(彰義門), 서남 소덕문(昭德門).

    이 가운데 흥인문에만 옹성(甕城)을 쌓았다.

    대략 공사는 이렇게 끝났지만 숭례문은 1396년에, 흥인지문의 옹성은 1397년 4월에야 완성되었다

 

세종(世宗) 4년(1422)에 이 성을 대대적으로 수축하여 흙으로 쌓은 부분을 모두 돌로 바꾸면서 더 높게 쌓고,

    석재를 약 2 : 1 길이 비율의 장방형으로 많이 다듬어 쌓았다.

    전국에서 약 32만 2, 000명의 인부가 동원된 이때의 개축으로 도성은 둘레 8만 9,610척.

 

숙종(肅宗) 30년(1704) 3월부터 약 5년간에 3군영(三軍營)에 분담하여 둘레 9, 975보,

    성첩(城堞) 7, 081개로 만드는 대대적인 수축을 하였다.

 

이처럼 서울성곽은 태조 때 처음 축조되어 세종 때 개축되고 숙종 때의 수축이 있었는데, 세 차례의 축조는

축조 방법과 돌의 모양이 각기 달라, 세 시기의 성벽이 쉽게 구분된다.

 

즉, 태조 때는 1척 정도의 다듬지 않은 네모꼴 작은 돌을 불규칙하게 쌓았으나 벽면은 수직이다.

세종 때는 2× 3척의 긴 네모꼴의 다듬은 돌을 아래 부분은 비교적 큰돌로, 윗 부분은 작은 돌로 쌓았으며,

성벽의 중앙부가 밖으로 약간 튀어나왔으나, 철과 석회를 사용하여 축성 기술이 향상되었음을 보여준다.

숙종 때는 가로와 세로가 2척 규모 정방형 돌을 정연하게 쌓아 간격 일정하고 벽면도 수직이다.

***********************************************************************************

 

 

 

 

 

'옛날사진·추억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시절 의 추석 귀성길   (0) 2014.02.03
1948년도 교통경찰  (0) 2013.08.28
그때를 아십니까?(60편)  (0) 2012.07.09
곽규석 쇼(1967)  (0) 2012.05.14
우리나라 옛날 교통수단  (0) 2012.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