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박해진 세상
봄도 무르익어 가고 있어서,
주말마다 바쁜 일 핑계로 미루던 화분 분갈이를 위해
동네 근처 산에 흙 좀 푸러 갔다.
스트로폼 큰 걸로 두 박스 가량 퍼 담고
그것도 일이라고 땀 좀 말리는데,
웬 영감이 저쪽에서부터 눈에 형광을 발하며 다가온다.
"아니, 왜 여기서 흙을 퍼가는 거야?"
언성이 좀 높다. 그것도 반말로......
"녜? 아니...저......" 우물쭈물..삐질삐질...
순간적으로 머리를 굴려 상황 판단을 해본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엄연한 사유재산인 산에서 나오는 물질이니
주인의 허락 없이-설령 흙 몇 삽이라도 퍼가는 것은
주인이 제지하더라도 할 말은 없다.
주인이 대뜸 언성을 높였다는 게
은근히 꼬라지가 나지만 나는 바로 꼬리를 내리고
사과인지 궁시렁인지도 모르는 말을 남기고
흙을 도로 쏟아놓고 뒤돌아서는데......
하소연할 수도 없는 부아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멈칫 섰다가 그냥 앞으로 나아갔다.
그 짧은 시간에도 오만가지 정서가 난맥을 이룬다.
'아니,그 흙 좀 퍼간다고 언성을 높이고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릴 건 모람......?'
'햐~ 세상 인심 한 번 각박하다.'
'돌아서서 한 번 대판 싸움을 걸어 봐?'
결국은 비참한 심정으로 터벅터벅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어릴 때 이웃집 밭에 몰래 가서 과일 서리를 한다든지,
닭서리에 밤새 막걸리로 동네방네
시끌시끌 휘젓고 다니던 추억은 예전에 잊혀진
추억으로 흘러버리고 만 요즘의 세태이긴 하지만,
사실 세상인심이 각박해진 것만은 분명하다.
-- 글쓴이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