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풍경

페루 나스카의 지상화

목눌인 2015. 5. 18. 10:29

[페루의 신비] 나스카의 지상화는 누가 그렸을까

마추픽추는 잠시 잊어라잉카문명과는 또다른 흙으로 만든 '찬찬유적'..남미 토착문화 신비유럽의 축소판 리마..식민지시절 아픔과 페루의 현재가 공존

 

신비의 도시 '마추픽추.' 페루 여행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빠지지 않는 잉카 제국의 고대 도시다. 마추픽추가 1983년 페루의 고대 유적 중 가장 먼저 유네스코(UNESCO) 세계 유산에 등재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페루 여행에서 마추픽추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마추픽추를 페루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남아메리카 토착 문화와 식민지 시절 스페인 문화가 공존하면서 페루는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켜 나갔다. 덕분에 다양한 문명의 유적이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리면서 전 세계 관광객들 발길을 불러모으고 있다. 한국에서도 페루 여행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올해 1~2월 페루를 찾은 한국인 관광객만 5677명으로 전년 대비 52%가 늘었을 정도. 마추픽추에만 '올인'할지도 모를 투어월드 독자들을 위해 놓쳐서는 안 될 페루 여행 명소를 소개한다.

 

198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남아메리카 토착 문화가 살아 숨쉬는 '찬찬 고고유적'

 

영원한 수수께끼…나스카의 지상화

"인간이 그렸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완벽하고 거대하다." 페루 나스카와 후마나 평원에 위치한 '나스카의 지상화'를 본 모든 이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다.

얼핏 보기에는 태평양 연안과 안데스산맥 사이에 위치한 황량한 자갈사막인 나스카 평원. 일단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혹독한 시련'을 거쳐야 한다. 쿠스코에서 이곳까지 버스로 걸리는 시간만 해도 9시간이 훌쩍 넘는다. 안데스산맥의 구불구불한 길을 버스로 이동하는 코스가 워낙 힘들어서 '죽음의 구간'이라는 별명까지 붙었을 정도다. 힘든 여정 끝에 이곳에 도착하면 땅을 파서 그린 거대한 지상 그림이 펼쳐진다. 땅 위에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만 경비행기를 타고 이곳을 여행하는 순간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기하학적인 도형, 그저 길게 그어진 선, 거미 콘도르 원숭이 등 다양한 식물과 동물까지…. 콘도르로 보이는 새는 그림 길이가 80m에 달하고 도마뱀 그림은 무려 188m다. 총면적 450㎢에 걸쳐서 이곳에 그려진 그림만 해도 200여 개가 넘는다. 인류의 문명과 과학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나스카 지상화를 누가, 어떻게 그렸는지에 대해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기에 신비감을 더한다.

그나마 '연중 강우량이 10㎜도 되지 않고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아 그림이 오랜 세월 온전히 보존됐다'는 것과 '기원전 500년에서 기원후 500년 사이에 그려졌다'는 사실만이 밝혀졌을 뿐 나머지는 모든 것이 수수께끼다.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하며 과거 문명인들에게 찬사를 보낸 것이 전부다.

오죽하면 "외계인이 그렸다"는 주장마저 설득력을 얻을 정도. 유래를 밝히기 위해 인간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스카 평원의 지상화는 지금도 아무 말 없이 관광객들을 반긴다.

 

페루 나스카와 후마나 평원에 위치한 '나스카의 지상화'

 

◆ 남미 고대 왕국의 추억…찬찬 유적

1824년 스페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을 이룬 페루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남아메리카 토착 문화와 스페인 문화가 공존하며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잉카 문명이 아닌 또 다른 남아메리카 토착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곳이 198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찬찬 고고유적'이다. 찬찬은 지금의 페루 북부·중앙 연안을 지배한 치무 왕국의 수도다. 이들의 전성기는 13~15세기. 한때 인구가 10만명에 달할 정도로 발전했지만 1450년 잉카 제국에 점령당했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 이전까지 남아메리카 최대 도시로 꼽히기도 했지만 더 이상 과거의 영광을 찾아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곳에 관광객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는 이유는 석조 건축이 주를 이룬 잉카 문명과는 달리 '흙'을 활용해 만든 광대한 건축 유적 때문이다. '어도비.' 찬찬 고고유적을 감상하기 전 알아둬야 할 단어다. '햇볕에 말린 벽돌'로 번역되는데 찬찬 고고유적의 모든 건축물이 커다란 어도비와 어도본(흙으로 만든 담)으로 만들어졌기에 지구상 어느 곳에서도 경험하기 어려운 신비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과거 이곳에 살던 찬찬인들은 어도비나 어도본 위에 진흙과 조가비 가루를 섞어 만든 재료로 칠을 해 한껏 멋을 부렸다. 높은 곳에 올라 도시 중심지를 내려다보면 척박한 산악 환경 속에서도 어떻게든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흙으로 집을 짓고 스스로 보호한 이들의 노력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페루의 수도 리마. [사진 제공 = 페루관광청]

 

◆ 식민지 시절의 아픔…페루 수도 리마

199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페루 수도 리마는 '도시는 인간의 필요로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어느 도시보다도 잘 보여주는 곳이다.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1535년 잉카제국을 멸망시켰을 당시 잉카의 수도는 쿠스코였다. 문제는 쿠스코가 내륙 고원에 위치해 물자수송이나 스페인 본국과 연락이 여의치 않았다는 것. 이에 피사로는 태평양 연안의 한 곳을 점찍어 도시를 만들었고, 이곳이 이제는 페루 수도가 된 리마다.

편리한 지배를 위해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나뉘어진 도시 구획과 도시 중앙에 위치한 광장, 유럽에서나 볼 수 있는 웅장한 대성당까지…. '유럽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 리마다.

이곳의 가장 상징적인 건물은 1535년 리마가 건설될 때 지어진 '리마 대성당'이다. 피사로가 직접 성당의 주춧돌을 놓았고, 성당 안에는 피사로 유해가 안치돼 있다.

여기에 거대한 피사로의 전신화까지…. 식민지 시절 아픈 기억과 페루의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 리마 대성당인 셈이다.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을 때 명칭을 아예 '리마 역사 중심지'라고 했을 정도로 식민지 시절 모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리마. 특히 1735년 지어진 토레 타글레 궁전은 리마의 식민지 시대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꼽힐 정도로 관광객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리마 = 정석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