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전설 야담

광개토왕비문(작가 김진명)

목눌인 2015. 10. 29. 11:32

작가 김진명씨의 이야기 

 

광개토왕비문에서  한일고대사 문제로 항상 논쟁이 되는 문장  

而倭以辛卯年來渡0破百殘00新羅以爲臣民

 

이 논쟁의 귀절인데, 여기서  백잔(백제) 다음에 오는 글자가 바로 동침(東侵) 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즉, 東侵으로 밝혀지면, 백제가 동쪽으로 신라를 쳐들어가서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 가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뒤의 문장인, 고구려가 백제를 쳤다는 문장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겁니다. 

앞의 일본(왜)가 있는 문장은 그 전에 그 내용이 끝나고, 뒤에 문장은 백제가 동쪽의 신라를 쳤다는 의미가 된다고 합니다.

 

김진명 작가는 이를 20년전에  광개토왕비 비문 탁본이 있는 일본에 가서, 동경대 역사학장에게 말했더니, 일본 역사학장이 인정하고, 결국 임나일본부설이 허구였다고 인정했다고 합니다 

그 동경대 역사학장은 일본교과서도 집필하던 사람으로, 그 이후로 그가 참여한 일본교과서에는 임나일본부설이 빠지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 20여년이 지난 후에 현재 일본교과서에는 임나일본부설이 거의 다 빠져 있다고 합니다.

 

동침(東侵)자가 밝혀진 사유는? 

광개토대왕비를 땅속에서 발견하고 탁본등을 했던 중국인이, 비문를 정리하기 전에, 미리 모든 비석문자를 직접써서 옮겨 놓았다고 하는데, 그 자료가 발견이 되어서 밝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1. 임나일본부 설은, 허구의 사실 !  가짜로 밝혀진 것이고

2. 광개토대왕비는 석회로 조작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고,

3. 위 논쟁 문구에서 밝혀진 글자는 동침(東侵) 이란 뜻이고, 결국 백제가 동쪽의 신라를 쳐서 신민으로 삼았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면 뒤의 문장, 고구려가 백제를 쳤다는 문장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겁니다.

 

위와 덧붙여서 이덕일 역사학박사의 이야기는 이렀습니다.

 

5세기까지 왜(倭)는 한반도 남부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 주 세력권은 전라남도 나주평야 지대와 남부해안, 그리고 가야지역이었습니다.

특히 나주지역이 주세력 지역이었는데, 증거는 나주지역에  경주 신라왕묘와 대등한 크기의 큰 무덤이 많이 있는데, 그 무덤의 형태가  7~9세기 일본 초기 세력지역의 무덤형태와 똑같습니다.

또한 중국고대역사서에는, 초기 왜(倭)가 한반도 남부에 있어서, 영토가 인접한 백제와 신라와 자주 전쟁을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즉, 5세기까지, 왜(倭)는 한반도 남부, 특히 전라남도 나주지역에 살던, 우리 고조선 민족의 한 부족이었습니다.

이 왜는 백제와 신라 와 대등하게 싸우다가, 5세기 고구려 광개토대왕에게 크게 패하여, 그 주력이 일본으로 이전하게 됩니다.

 

즉, 6세기 이후의 왜(倭) = 현재의 일본 이라고 할 수 있지만,

5세기 까지의 왜(倭)는 한반도 남부, 특히 전라남도 나주지역에 살던 세력이고,  이전의 왜와 이후의 왜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최종 결론은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은 허구, 조작이라는 겁니다.

일본왕실은, 한반도 도래인( 나주의 왜, 백제인 등)이 최소 50%는 섞인 왕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