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시조

동시 '학원 가기 싫은 날'

목눌인 2015. 5. 20. 13:32

ㆍ동시 '학원 가기 싫은 날' 논란… 잔혹한 유럽 동요 '마더 구스'는 널리 읽혀

나쁜 아가

아가, 아가, 나쁜 아가

조용히 해, 요 시끄러운 것아

지금 좀 조용히 해. 아님

보나파르트가 이 길로 지나갈 거야

아가, 아가, 그는 거인이야

루앙의 철탑처럼 거대하고 시커멓지

그는 그 철탑에 기대서 아침도 먹고 저녁도 먹지

나쁜 사람들을 매일 잡아먹지

아가, 아가, 네 소리를 들으면

그가 집으로 뛰어와서

고양이가 쥐를 찢어 죽이듯이

단번에 사지를 찢어 널 죽일 거야

그리고 널 마구 때리고 또 때릴 거야

곤죽이 될 때까지 때릴 거야

한 조각씩 물어 뜯어서

그리곤 널 계속 먹어 치울 거야.

<마더구스>중에서

 

학원가기 싫은 날

학원에 가고 싶지않을 땐

이렇게

엄마를 씹어 먹어

삶아 먹고 구워 먹어

눈깔을 파먹어

이빨을 다 뽑아 버려

머리채를 쥐어뜯어

살코기로 만들어 떠먹어

눈물을 흘리면 핥아 먹어

심장은 맨 마지막에 먹어

가장 고통스럽게

<솔로 강아지>중에서




현대판 분서갱유를 당한 동시집 <솔로 강아지>와 저자 이순영양의 남매가 그간 펴낸 시집들. <솔로 강아지>는 이익단체에 의해 폐기된 시집이라는 출판 역사를 기록하게 됐다. / 이상훈 선임기자

 

유럽에서 널리 읽히는 전래동요 <마더 구스(Mother Goose)> 가운데 '나쁜 아가(Naughty Baby)'라는 노래가 있다. 시끄러운 아이를 잠재우기 위한 자장가로,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등장한다. 이 노래는 아이의 생명을 위협하며 조용히 하라고 경고한다. 아이를 재우려는 것인지 나폴레옹을 비난하는 것인지 헷갈리지만, 일반적으로 두 가지를 모두 노린 것으로 평가된다. 마더 구스는 17세기 이후 수백년 넘게 불리고 있으며 여러 출판사에서 선집이 나온다. 전 세계 영문학자들도 이 작품에 대해 다양한 평가를 내놓고 있다.

최근 출판된 동시집에 잔혹한 시가 들어 있다며 여론이 들끓었다. 동시집 <솔로 강아지>의 '학원 가기 싫은 날'이란 시다. 학부모들이 출판사로 몰려가 시집을 없애라고 요구했고 전량 회수돼 폐기됐다. 이 동시집이 세상에서 사라지면서 논란은 순식간에 잠들었다. 문학 표현이란 무엇인지, 어떤 표현을 막을 수 있는지, 폭력에 의해 출판물을 없애도 되는지 논의되지도 못하고 없어졌다. 특히 출판사 측은 "표현의 자유의 허용 수위를 넘어섰다"는 사과문을 내놨다. 학부모 단체나 출판사에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판단할 권한이 있느냐는 비판도 있었다.

학부모들 출판사에 몰려가 항의

여론의 무차별적인 비난, 출판사의 상업적 고려와 함께 저자의 논쟁 회피가 이번 파쇄 사건의 중요 원인이다. 이번 시집을 지은 당사자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동시집의 저자는 초등학생인 10살 이순영양이다. 어머니는 등단한 시인 김바다씨이고, 아버지는 변호사 이인재씨다. 따라서 문학가이고 법률가인 부모가 작품 파쇄라는 극단적인 조치에 동의한 것이 우선 의외다. 이 변호사의 설명은 이렇다. "학부모 단체의 항의에 출판사에서 난처해했고 우리도 사정을 이해했다. 큰 출판사도 아니고 영세한 곳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자기 표현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갖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폐기하지 못하게 하는 가처분 소송을 냈었다."

하지만 이 무렵 '아이에게 사탄의 영이 있다'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계속해서 이 변호사의 이야기다. "이러다가 정말 큰일나겠다 싶었다. 아이를 위해서 가처분을 냈던 것인데 더 심한 말이 나올 수도 있었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고 뭐고 소송을 중단했다." 김 시인은 "아이가 아직도 책이 폐기된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했다. 해당 출판사는 책을 다른 곳에서 내도 괜찮다는 의사를 이순영양 가족에게 밝혔고, 가족들은 당분간 조용히 기다려보다가 재출판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건이 그동안의 논란과 다른 점은 표현의 자유를 이익단체가 전면적으로 제한했다는 점이다. 시집 <솔로 강아지> 폐기를 요구한 학부모들은 실제로는 눈앞에서 불태우라고 했었다. 그야말로 분서갱유(焚書坑儒)에서의 '분서'를 요구했다. 분서갱유는 기원전 200년 무렵 진나라 시황제가 책을 불태우고 학자를 매장한 일이다. 이 때문에 이양의 아버지 이인재 변호사도 "(이익단체가 나선) 현대판 분서갱유다. 전 세계적으로 공권력이 아니라 학부모 단체의 요구로 금서로 만든 사례가 있느냐. 더구나 소설이나 수필도 아니고 시나 동시가 이렇게 된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17세기 이후 수백년 넘게 불리고 있는 유럽 전래동요집 <마더 구스>의 표지. 잔혹한 내용이 적지 않지만 여러 출판사를 통해 다양하게 묶어 팔리고 있다. / Greenwich Workshop Press books

 

어머니는 시인 아버지는 변호사


물론 표현의 자유도 여러 이유로 제한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반드시 법률에 근거해야 하고, 행정부가 아닌 사법부가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법률에 근거를 두고 법원이 판단한 경우에도 반드시 위헌 논란이 이어진다. 표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가운데서도 아주 강력하고 핵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학부모 단체의 책을 태우라는 요구에 대해 헌법재판소 연구관 출신의 노희범 변호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는 맞지만 헌법소송을 비롯한 법률로는 다투기 힘들다. 공권력이 표현의 자유를 막았다면 법률적인 문제가 되지만, 이번에는 출판사가 학부모들의 압력에 굴복한 것일 뿐이다. 법률적으로는 그렇다."

더욱 문제는 사법부조차도 전면적으로 표현을 제한하는 경우는 없다는 점이다. 가령 박유하 세종대 일어일문학과 교수의 책 <제국의 위안부-식민지 지배와 기억의 투쟁>에 대해 서울동부지법이 출판금지 가처분을 인용할 때도, 일부 표현의 수정과 삭제를 요구한 것이다. 또 이 결정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와 함께 1996년 장정일의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문제가 됐을 때도 자진 회수였다. 이후 위헌폐지되는 간행물윤리위원회가 '유통 제재 건의' 결정을 내리자 출판사가 작가와 협의해 책을 수거했다. 이후 장정일이 수사를 받은 것은 음란물을 배포했다는 결과의 문제였다.

노희범 변호사는 "설령 동시집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청소년 불가 등을 표기하는 방법으로 도달을 제한할 수 있는 정도다. 사법부가 표현 자체를 전면적으로 막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특히 표현의 한계가 나이·성별·국적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익단체의 압력이 아닌 법률절차를 거치는 것이 전제다. 노 변호사는 "미국을 비롯한 외국이었다면 엄청난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을 문제인데, 너무나 조용히 사라졌다. 우리 사회가 표현의 자유에 대해 인식이 높지 않음을 보여줬다"고 했다. 실제로 한 경제신문에서는 '상상력의 끝이 어디일지 심각하게 염려스럽다'며 표현은 물론이고 상상까지 문제 삼는 태도를 보였다.

'아이에게 사탄의 영이 있다'며 비난

잔혹성을 비롯해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표현이 금지되는 것은 아니라고 법조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그럼에도 이 동시에 대해서는 "문제가 많다"는 얘기가 그치지 않는다. 그리고 문제가 있다는 것이 출판이 금지되어야 한다는 근거다. 문학은 개인 내면과 사회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는 도구임을 생각하면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면이 있다. 아무튼 이 시집은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위험한 시일까. 문학평론가인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황호덕 교수는 "사회가 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분서를 주장한 사람들은) 문학에 대한 리터러시(Literacy·문자화된 기록물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획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가 떨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황 교수의 설명을 구체적으로 들어보면 이렇다. "시는 괜찮은 시다. 그 나이에 가질 수 있는 의문을 표현하고 있다. (수컷이 없어 인형과 노는) '솔로 강아지'만 해도 인간에게 사육당하면서 많은 것을 금지당한 강아지가 자기에게 의탁해온 것을 호소했다. '학원가기 싫은 날'도 생물학적인 엄마를 죽이겠다는 것이 아니다. 학원에 보내는 엄마, 가라마라 하는 엄마, 결정하는 엄마를 마음에서 죽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를 신문기사나 법정진술처럼 받아들인 것이다.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반응이다. 심지어 출판사에서 그린 일러스트레이트도 시어를 그대로 옮겼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크기도 했다."

문학을 일차원적으로 이해한 우리 사회의 폭력은 반세기 전과 달라진 게 없다. 1965년 분지 필화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1965년 소설가 남정현이 단편소설 <분지(糞地)>를 발표하고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똥의 땅'이라는 뜻의 이 소설은 미군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정신착란을 일으켜 사망한 어머니를 둔 주인공이 여동생의 동거남인 미군의 아내를 강간하는 내용이다. 남정현은 소설에서 우리가 민족적인 강간을 당한다고 은유하고, 이를 언어의 형태로 복수한 것인데 결국 표현이 문제돼 잡혀 들어갔다.

사법부도 표현 금지하지는 않아

황호덕 교수는 사실상 검열이 이익집단에 의해 일어난 것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우리 사회는 <솔로 강아지>가 얘기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문학적인 테두리 안에서 해석되거나 다툴 수는 있지만 파쇄라는 방식으로 없었던 것으로 하자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 아이가 비명을 지른 것인데 못 본 척하겠다는 것 아닌가. 사람 하나를, 아이 하나를 마녀로 만들어서 분쟁을 정리한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세월호가 침몰한 것에 대해서도 없었던 일로 하는 게 가장 간단하지 않은가."

해묵은 검열의 문제가 다시 출현했다고 황 교수는 말했다. "표현의 한계에 대해서는 지난 역사를 거쳐오면서 사회적으로 합의한 방식이 있다. 사전·사후 검열을 안 하기로 하고, 영화라면 등급을 주고, 문학이나 출판물은 포장을 씌우기로 했다. 이런 성과를 단번에 모두 되돌려 파쇄해서 없애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래 세대인) 아이들을 검열을 통해 순치시키는 것이다. 역사적 경험으로 보면 글자를 지우려고 한 세력 중에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나쁜 아가'를 담은 가장 유명한 <마더 구스 선집>은 옥스포드대학 출판사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 책을 불태워 없애라는 요구는 없었다. 도대체 영국 시민들은 얼마나 잔인하기에, 이런 무시무시한 동요가 판매되고 읽히도록 놔두는 것일까. 그런 것이 아니라면, 어쩌면 정말 잔인한 것은 10살짜리 소녀의 비명이 아니라, 무력을 동원해 이를 잘게잘게 잘라 없애버린 우리 어른들일지도 모른다.

전 세계 명작 동요나 동화 가운데는 잔혹한 묘사가 들어 있는 것이 많다. 동요 가운데는 영미권의 마더 구스가 대표적이고, 동화 '빨간 모자'의 원작은 엄마 말을 듣지 않고 다른 길로 갔다가 늑대에게 죽임을 당하는 내용이다. 동화 '심청이야기'는 딸이 아버지를 위해 목숨을 버리고, 주제도 이를 칭송하는 것이다. 동화의 잔혹성에 유교적 가치관이 투영된 결과다. 당장 우리만 해도 "자꾸 울면 호랑이가 물어간다"면서 죽음의 공포를 암시하며 겁을 준다.

잔혹하기로 가장 유명한 것이 그림형제의 동화다. 지금 팔리고 있는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동화집>은 1812년 첫 출간 이후 약간 수정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무시무시함이 가득하다. '강도 신랑'의 한 부분을 보면 이렇다. '술에 취한 강도들은 여자가 지르는 비명과 애원은 들은 척도 않고 여자에게 술을 먹였습니다. 그 술을 마시자 여자는 심장이 터져 버렸습니다. 그러자 강도들은 여자의 고운 옷을 갈기갈기 찢더니 여자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그 아름다운 몸을 토막토막 썰어 거기다 소금을 뿌렸습니다.'

가혹함은 신체에 관한 것뿐 아니라, 정신에 관한 것도 많다.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하던 왕이 아내를 닮은 딸에게 결혼을 하자면서 계속 괴롭히거나(털복숭이 공주), 계모가 의붓아들을 괴롭히다가 나중에는 죽여서 요리로 만들고 그것을 아버지가 먹는다(향나무). 이런 잔혹함은 환상성을 만들어 현실성을 떨어뜨리기 위한 장치라고 한다. 만약 부모와의 갈등 등 현실을 직접 다룰 경우 아이들이 부담을 갖고 피하게 된다. 그래서 현실성을 제거하고 문제해결 방식만을 이해토록 하는 것이다.

어린이문학은 성인문학과 달리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기 어렵다. 어린이들이 인지적·정서적 발달이 낮아 현실의 해독을 그대로 알려주는 것은 오히려 위험해서다. 하지만 어린이문학도 당연히 현실에 대한 대처능력을 키워주는 것을 목표로 하며, 이를 위해 환상성을 입히며 대표적으로 잔혹함을 동원한다는 것이다. 특히 동양과 달리 서양의 아동문학은 잔혹한 행위가 벌을 받지 않는데, 이는 단순히 도덕적인 교훈을 전파하는 것보다는 삶의 다양성을 이해시키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참고자료=고광수 '전래동화에 나타나는 잔혹성의 의미와 효과' <고전문학과 교육> 제3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