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풍경

마야문명의 꽃 치첸이트사

목눌인 2016. 5. 5. 21:34

마야문명의 꽃

치첸이트사

Ruins of Chichén Itzá in Mexico

        

치첸이트사

마야어를 분석해보면 그 먼 조상은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작은 부족에서 갈라져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 부족이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쯤 대륙의 남쪽으로 내려와 정착했다는 것이다. 마야문명은 멕시코 남쪽, 유카탄반도, 콰테말라 일대가 중심지였다.

마야문명은 현재 중앙아메리카의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에서 과테말라 · 유카탄반도의 전역과 온두라스 일부에 걸쳐 있었고 과테말라 북부 페텐 지역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고대문명이다. 자연적인 지형에 의해 세 지역으로 나뉘었는데 광대한 열대림으로 덮인 페텐 지구 · 우수마신타 분지의 파시온강 지구 · 유카탄 저지대 지구이다. 면적은 남한의 세 배 정도인 약 30만 제곱킬로미터이다.

530~629년 마야족은 근거지였던 중부 멕시코를 버리고 유카탄반도로 이주했다. 그곳은 물이 부족했는데 마야족은 반도 북부에서 대단히 큰 세노테(Cenotes, ‘자연의 샘’)를 발견해 물 문제를 해결했다.

치첸이트사와 다른 고대 도시들의 위치

마야족이 유카탄반도에 건설한 도시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 치첸이트사이다. 물이 부족한 유카탄반도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치첸이트사에는 세노테가 두 군데 있다. 두 곳 모두 깊이 40미터 직경 60미터 정도 되는 커다란 샘이다. 두 샘 사이의 거리는 1.6킬로미터이다. 하나는 주민들의 식수와 농업용수로 사용했고 다른 하나는 ‘황금의 샘’으로 알려진, 비의 신 차크(Chac)에게 제물을 바치는 신성한 샘이었다. 마야인들의 신화에 따르면 세계는 신들의 희생으로 탄생했고 인간은 세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신들에게 산 제물을 바쳐야했다.

마야족 설화에 따르면 12~13세기경 마야족 사회에 외국인 한 명이 포로로 잡혀 들어왔다. 마야인들은 그를 쿠쿨칸(초록 날개가 달린 뱀)이라 불렀고 비의 신 차크에게 바치는 제물로 성스러운 샘 속에 던졌다. 그러나 쿠쿨칸은 죽지 않았다. 마야인들은 그를 건져낸 후 ‘살아 있는 신’으로 받들었고 그는 치첸이트사의 지배자가 되었다. 마야인들은 신전을 지어 그에게 바쳤다.

9세기 톨텍의 왕 케찰코아틀(Quetzalcoatl)은 유카탄에서 가장 부유한 치첸이트사를 정복했다. 톨텍과 관련 있는 이트사인들에게 정복당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치첸이트사가 마야어로 ‘샘 어귀에 있는 이트사의 도시’라는 뜻을 지니기에 나온 말이다. 치첸이트사를 보면 건축 · 조각 · 그림, 심지어는 관습까지 마야와 톨텍의 문화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문화의 혼합은 1400년 도시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버려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톨텍은 예술가(혹은 숙련공)를 뜻하는 말로 돌을 다루는 능력이 뛰어났다. 이들 톨텍인은 10~12세기에 중앙 멕시코 일대를 장악하며 번영했는데 치첸이트사도 톨텍의 지배하에 들어가며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사진은 톨텍족의 수도였던 툴루의 유적으로 톨텍 전사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치첸이트사 유적지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비교적 오래된 고전 시대의 건축물은 치첸 비에호(Chichen Viejo)에 주로 있고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은 치첸 누보(Chichen Neuvo)에 있다.

치첸이트사에 있는 유적들의 위치를 나타낸 그림

① 엘카스티요 ② 구기장 ③ 재규어신전 ④ 희생의샘(황금의샘) ⑤ 전사의신전 ⑥ 세노테 ⑦ 엘카라콜. 오른쪽이 치첸 비에호(Chichen Viejo) 지역으로, 왼쪽의 치첸 누보(Chichen Neuvo)보다 이전 시대에 축조된 건물들이 있는 곳이다.

유명한 쿠쿨칸의 피라미드 엘 카스티요(El Castillo, 성채)는 평원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 피라미드는 마야족의 뛰어난 수학적 재능을 보여준다. 9층으로 된 피라미드의 사면에는 각각 91개의 가파른 계단이 있고 정상의 제단까지 합하면 1년의 날 수와 같은 365개가 된다. 게다가 사면에서 52개의 판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것은 1년의 주일 수를 상징한다. 신기한 것은 중앙 계단 앞에 서서 손뼉을 치면 정상 부분에서 째지는 듯한 소리가 메아리친다는 사실이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박수를 치면서 이 메아리를 확인한다.

치첸이트사를 대표하는 유적인 쿠쿨칸의 피라미드 엘 카스티요
엘 카스티요(쿠쿨칸의 피라미드) 정상에서 구기장 쪽을 바라본 모습

구기장 너머로 유카탄반도의 대평원이 마야 역사의 비밀을 간직한 채 끝없이 펼쳐져 있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깃털 달린 뱀을 기리는 의식이 1년에 두 번씩 치러지는데 춘분과 추분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중앙테라스의 그림자가 서서히 몸을 꼬며 아래로 내려오는 뱀의 모습처럼 보인다. 이 그림자는 계단 발치에 있는 돌로 된 두 마리의 거대한 뱀의 머릿속으로 사라진다. 마야인들은 이 그림자를 보면서 쿠쿨칸에 대한 숭배심을 키웠을 것이다.

엘 카스티요의 한쪽 계단 아래에 있는 조각상 케찰코아틀

케찰코아틀은 초록 날개의 뱀을 뜻하는데 마야인들이 숭배하던 신성한 신이다.

엘 카스티요의 윗부분으로 정상에 신전이 있다.

쿠쿨칸의 피라미드 정상에 있는 신전에는 돌로 만든 차크 몰 신상과 재규어 형상의 비취 옥좌가 있다. 치첸이트사의 상징이자 톨텍 전사의 상징인 재규어 형상은 재규어신전과 전사의 신전에서도 볼 수 있다.

앞에는 돌로 된 차크 몰 신상, 뒤에는 비치가 박힌 재규어 형상의 옥좌

치첸이트사를 상징하는 엘 카스티요 피라미드 정상의 신전 안에 있다.

엘 카라콜(El Caracol)이란 천문대는 마야족의 높은 천문학 수준을 보여준다. 둥근 탑 내부에 나선형 계단이 있는 엘 카라콜을 에스파냐인들은 ‘달팽이’라 불렀다. 사제들은 천문대를 통해 정확한 시간을 측정했다. 치밀하게 계산해 만든 창문을 통해 햇빛이 정확하게 1년에 두 번씩 천문대의 중앙까지 들어왔기 때문에 사제들은 이것으로 날짜와 시간을 알 수 있었다.

엘 카라콜은 서기 1000년 금성이 뜨고 질 때 수평선과 만나는 점들 중 양극단에 있는 점에 방향이 맞추어져 있으며 태양의 분점 · 하지점 · 월몰점 · 정남향과 정서향을 정확히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금성은 마야에서 특별한 숭배의 대상이었다. 마야 천문학자들은 금성 달력을 따로 만들었는데 481년 동안 두 시간 이내의 오차가 생길 정도로 정확했다.

에스파냐인들이 달팽이라고 불렀던 엘 카라콜은 치첸 비에호 지역에 있는 천문대로, 원형의 건물 내부에는 달팽이 모양의 나선형 계단이 있다. 건물 윗부분의 치밀하게 계산된 창문을 통해 햇빛이 1년에 두 번씩 건물 중앙까지 들어왔다고 한다. 마야인들은 이곳에서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행성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카툰이란 단위로 시간을 측정했던 그들은 3세기부터 이미 0과 20진법을 사용했을 만큼 과학 수준이 높았다. 20진법은 손가락과 발가락을 전부 합치면 20개인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들은 분수를 알지 못했지만 바빌로니아인처럼 계산을 돕는 곱셈표를 만들었다. 0의 사용은 인도보다는 300년, 아라비아 상인들보다는 700년 정도가 앞서는 것이다. 그들은 이 숫자 체계를 이용해 하늘의 운행, 시간의 경과를 계산했고 태양력을 만들었다.

마야인들은 아브라는 윤년을 갖고 있었는데 아브는 각기 20일로 이루어진 18개월과 5일로 이루어진 ‘짧은 달’로 이뤄졌고 1년을 365.2420일로 계산했다. 근대의 엄밀한 계산에 따르면 1년은 365.2422일인데 그들의 계산과 거의 차이가 없다. 또한 달의 주기를 29.5320일, 금성의 주기를 580일로 계산했고 그 오차는 달의 경우 0.00039일, 금성은 0.08일에 지나지 않는다.

마야 학자 에릭 톰슨은 “역사상 다른 어떠한 민족도 마야만큼 시간의 문제에 깊이 흥미를 가진 적이 없다. 또한 다른 어떤 문화도 이만큼 이상한 과제를 심오하게 발전시킨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동시에 마야인들은 운반용 수레나 철제도구를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기술적으로 낙후한 면도 있었다.

천문대에서 의식을 치르는 마야인들의 모습을 상상한 그림

엘 카스티요의 동쪽에는 1000개의 기둥으로 둘러싸인 전사의 신전이 있다. 톨텍족의 건축 방식으로 지어진 이 건물 주위로는 무장한 전사의 화려한 모습이 무수하게 새겨진 기둥들이 있는데 짚을 얹은 나무 지붕을 받치고 있다. 이는 마야 건축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특이한 형태이다.

전사의 신전은 높이 30미터, 기대 면적 60제곱미터의 피라미드형이며 급경사 계단을 올라가면 제단 위의 ‘차크 몰(Chac-Mool)’ 신상이 보인다. 앉아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누워 있는 모습도 아닌 이 신상은 상체를 45도 각도로 들고 있고 발목을 엉덩이에 붙인 채 두 무릎을 바로 세우고 있다. 얼굴은 왼쪽으로 향한 채 끝이 안 보이는 어딘가를 응시하면서 두 손은 가지런히 모아 배 위의 접시를 받치고 있다. 이 접시 위에 사람의 심장을 바쳤다고 한다.

이 신전에서 비의 신이 살고 있는 성스러운 샘까지는 너비 4미터, 길이 400미터의, 돌이 깔린 도로로 이어져 있으며 도로 양편에는 날개 달린 뱀의 신 쿠쿨칸의 조상 수백 개가 난간처럼 줄지어 서 있다.

전사의 신전
전사의 신전 위에 있는 성소의 차크 몰 신상

차크 몰의 배 위에는 접시가 얹혀 있는데 마야인들은 여기에 사람의 심장을 제물로 바쳤다고 한다.

치첸이트사에는 중앙아메리카에서 가장 크고 정교한 구기장이 있다. 길이는 91미터 정도이며 벽면에는 마야 예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그림들이 양각으로 꾸며져 있다.

이 구기장에서 마야인들은 일곱 명씩 두 팀으로 나뉘어 팔꿈치와 무릎, 허벅지만 사용해서 고무공을 8미터 높이의 돌고리에 집어넣는 경기를 했는데 뱀 형상의 돌고리는 아직도 남아 있다.

구기장
구기장 벽의 8미터쯤 높이에 있는 둥근 돌고리

이곳에서 마야인들은 죽음의 제례라고 할 수 있는 신성한 경기를 펼쳤다.

이 경기는 특정 사람만 참가할 수 있는 신성한 행위였다. 패자는 목이 베어져 제단에 장식됐는데 승자 역시 희생 제물로 바쳐지곤 했다. 구기장의 ‘두개골의 벽’에는 이런 풍속이 조각되어 있다. 마야의 창세 신화인 포풀 부(Popul Vuh)에도 영웅들이 주민들의 목숨을 담보로 구기장에서 악마에게 도전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구기장 벽면 하단에 새겨진 부조로 경기의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선수들 중 한 명이 종교적 희생양으로 참수를 당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참수당한 선수들의 해골을 새겨 놓은 부조이다.

마야문명은 최전성기를 누릴 때 갑자기 사라졌다. 마치 예정된 운명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나의 민족이 전쟁으로 멸망하는 예는 흔히 있다. 그러나 마야에서는 그런 전쟁이 일어난 흔적이 없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흔적도 없다. 문명의 후계자도 전설도 하나 남기지 않았다. 수많은 마야인들은 그들의 찬란한 밀림 문명과 함께 그야말로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문명의 흥망에는 내부적인 원인과 외부적인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마야문명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내부 요인으로는 소수 지배계급의 독선적인 욕망을 더 이상 충족시킬 수가 없었기 때문에 마야문명이 소멸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지배계급은 웅장한 신전이나 기념비를 계속해서 세우려 했다. 그러나 동물의 힘을 빌리거나 설비를 갖추지 않고 인간의 힘으로만 이런 건축물을 건설하려면 엄청난 희생이 따르게 마련이다. 결국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로 기아와 강제노동을 견디다 못한 대중이 지배계급에 반란을 일으켰을 것이다. 그래서 지배 계급을 상징하는 석비나 석조물을 전혀 세우지 않았고 세우더라도 연호를 새기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지배자의 상을 파괴했다는 사실이 고고학 조사에 의해 확인되었다.

외부 요인으로 제일 먼저 거론되는 것은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과 같은 대규모 질병이다. 학자들은 1482년 황열병이 신대륙의 주민들에게 치명상을 입혔다고 추정했지만 마야인들의 유골에서 황열병의 흔적이나 전염병으로 인한 대규모 시체 매장지 등 직접적인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한편 고원지대에서 세력을 펼치고 있던 유목민족의 공격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이 공격을 피해 마야인들은 450년부터 밀림으로 도피하기 시작했다. 침략의 충격파가 커짐에 따라 세련된 마야인들은 생활의 리듬을 잃고 말았다. 신관이 권위를 잃고 성스러운 건물들이 황폐해졌고 지배 귀족 엘리트들 역시 몰락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13~16세기까지 벌어진 내란은 3000년 이상 계속된 찬란한 문명의 죽음을 재촉했다. 그러므로 16세기 초 유카탄반도에 상륙한 에스파냐인들이 만난 마야인들은 원시 상태로 돌아간 빛을 잃은 민족에 지나지 않았다.

1889년의 치첸이트사

처음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폐허화되어 있다.

참고로 앞서 언급한 ‘황금의 샘’ 전설에 얽힌 이야기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마야인들은 가뭄이 계속되어 기근이 닥치면 비의 신 차크가 노해서 내린 벌이라고 생각했고 차크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성스러운 소녀들을 보물과 함께 ‘희생의 샘’에 바쳤다. 황금의 호수라는 전설은 여기에서 생겨났다. 이 샘은 치첸이트사에 있는 ‘황금의 샘’이라 불리는 곳으로 지름에 비해 상당히 깊기 때문에 ‘마의 샘’이라는 별명도 있다.

마야인들이 비의 신 차크에게 처녀를 제물로 바치며 신성시했다는 황금의 샘

‘황금의 샘’ 전설은 1549년 유카탄 지방의 이사마르 수도원에 온 에스파냐의 프란시스코파 수도사 디에고 데 란다(Diego de Landa, 1524~1579)에게서 유래했다. 그는 마야인들을 기독교도로 개종하려면 그들의 신앙을 철저히 없애야 한다면서 마야의 기록 문서를 모두 불태우고 유적들을 파괴하여 마야인들이 가장 경멸한 사람 중 한 명이다. 마야인들의 사회적 습관 · 풍습 · 역법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란다는 마야인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유카탄 사물기》에 낱낱이 적었다. 마야문명의 파괴자가 동시에 마야문명의 최고 해설자가 되었다는 것은 역사의 장난이라 할 수밖에 없다. 란다는 그 책에서 ‘황금의 샘’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이 지방 사람들은 가뭄이 닥칠 때 신에게 희생의 제물로 산 사람을 샘물에 던졌다. 던져진 사람은 죽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또한 희생자 외에도 많은 보석과 귀중품을 던져 넣었다. 인디언의 샘에 대한 신앙은 절대적이어서 만약 이 지방에 금이 있었다면 대부분 샘물 속에 있을 것이다.”

란다의 기록에 따르면 희생자는 대부분 젊은 처녀들 중에서 선정되었는데 선정된 희생자들은 호화로운 보석으로 몸을 꾸미고 쿠쿨칸의 피라미드 위에 있는 신전에서 샘으로 통하는 사쿠베(성스러운 길)를 따라 행진했다. 샘 서쪽에 있는 작은 신전에 도착한 처녀들은 발체(최음제)라는 술을 마신 뒤 샘의 남쪽 끝에 있는 기단에서 차례로 깊은 샘물에 몸을 던졌다. 그런데 이때 처녀들은 몸을 던지기 직전에 머리에 날카로운 일격을 받았다고도 하며 처녀들의 가슴을 칼로 도려낸 후 심장만 샘 속에 던지거나 머리만 던져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마야인들이 신성한 샘에 소녀를 제물로 바치는 장면을 상상한 그림

란다의 책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혔다가 1863년 에스파냐 마드리드 자료관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유카탄의 미국 총영사를 지냈던 에드워드 허버트 톰슨은 란다의 이야기를 사실이라고 믿었다. 슐리만(Heinrich Schliemann, 1822~1890)이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를 진실로 믿고 트로이 발굴에 성공한 것처럼 《유카탄 사물기》는 마야의 《일리아스》가 될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외교관답게 주도면밀했던 톰슨은 깊이를 알 수 없는 ‘황금의 샘’ 속의 보물을 건지기 위해 심해잠수 훈련을 받는 동시에 샘을 포함한 치첸이트사 주변의 땅을 헐값으로 구입했다. 1904년 준설기 한 대를 샘에 들여왔다. 준설기는 쉬지 않고 작동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준설기는 토기 · 화살촉 · 구리 · 방울 · 비취와 흑요석 장신구 등을 담아 올렸다. 인간의 두개골도 건져냈다. 톰슨은 직접 잠수해 화려한 의식용 나이프를 비롯하여 황금 원판 · 나무와 돌로 된 조상 등의 유물을 수없이 건졌다. 그러나 전설처럼 엄청난 금은 쏟아져 나오지 않았다.

그가 발견한 유물은 하버드대학교 피버디박물관과 시카고의 필드박물관으로 옮겨졌고 과학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금이나 동제품의 대부분은 마야인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황금의 샘’을 찾은 순례자와 상인들이 빠뜨린 것이었다. 엄청난 양의 금이 수장되었을 것이라는 전설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리고 톰슨이 발견한 남자 12구, 어린아이 20구, 여자 8구의 유골을 통해 희생 제물로 처녀를 선발했다는 이야기가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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