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예술품

열두 先人의 글씨 감상

목눌인 2013. 3. 12. 17:09

 

 

열두 先人의 글씨 감상


書如其人



글씨에는 사람의 성품과 교양이 고스란이 배어 있습니다.
삼성에서 제작한 12 선인들의 인격이 담긴 귀한 글로 제작되어 있어

출처를 밝히고 여러분과 좋은 선인의 글들을 같이 감상하고 싶습니다.

이즈음에는 글씨를 주고 받을 기회가 드물어서,

 그 멋과 맛이 새롭습니다.
위 네 글자는 순서대로 이황, 이이, 안중근, 김정희가 쓴 글에서

한자씩 가져와 모은 것입니다.


1. 龍飛 (창암 이삼만 1770~1847)


용이 하늘에 날아오른다. : 임금의 즉위를 성스롭게 이르는 표현이다.
이삼만은 평생 조선 글씨에 독창성을 불어 넣으려고 노력한 서예가이다.

 그의 글씨는 물 흐르듯 자연스롭고 생동감 넘치는 붓놀림이 특징으로

 창암체 또는 유수체라고 불리운다. [고예가 소장품]


2. 漢詩 (율곡 이이 1536~1584)


'산봉우리는 절의 나무를 감싸고,

계곡물은 신비한 거문고를 연주하네.
밥 먹는 것 말고는 다른 일하는 것 없이,

 새벽부터 저녁까지 종소리 풍경소리뿐'

조선시대 성리학의 대가 이이가 1564년 초가을에 쓴 시이다.
도학자이자 경세가였던 이이의 성품이

 담담하면서도 힘찬 필치에 잘 드러나 있다.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


3. 竹爐之室 (추사 김정희 1786~1856)


'차를 끓이는 죽로(대나무 화로)가 있는 방'이라는 뜻으로

차에 박식했던 친구 황상이 차를 선물로 보내오자

 김정희가 답례로 써준 다실 이름이다.

귀향지에서도 차를 즐겼던 김정희는

 차 달이는 소리가 대밭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와 같다고 여겼다.

 추사체의 본연의 고졸하고 힘찬 기상이 느껴지면서도

독특한 개성이 넘쳐 흐른다. [리움 삼성 미술관 소장]


4. 墨緣 (訥人 曺匡振 1772~1840)


'먹으로 맺은 인연'

곧 학문과 예술로 맺은 인연이라는 뜻이다.
前漢시대의 고법을 모법삼아 전서의 특징을 가미하여 예서체로 썼다.

김정희와 함께 조선시대 대표적 명필가로 손꼽히는 조광진은

 평생 벼슬을 하지 않고 글씨공부에 힘썼다.

 [경남대학교 박물관 소장]


5. 外叔母에게 쓴 便紙 (正祖대왕 1752~1800)


정조가 어린 시절에 외숙모에게 보낸 편지로,

가을을 맞아 외숙모의 문안을 여쭙는 내용이다.

정조는 여덟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왕세손에 책봉되었으므로

 그보다 더 어려서 쓴 편지임을 알 수 있다.

 그림과 글씨에 능했던 정조가

어린 시절부터 영특했음이 엿보인다. [동예헌 소장]


6. 看取淺深愁 (선조 대왕 1552~1608)


선조가 직접 쓴 창덕궁 영화당 현판 글씨로

 당나라 이군옥의 시

 '雨夜呈長官'의 동해바다의 깊이를 잴 수 있지만

 내 마음의 근심은 가늠하기 어렵다

[請量東海水 看取淺深愁']에서 따온 구절이다.

정갈하면서도 간단명료한 필치에

나라 일을 돌보는 이의 깊은 근심이 담겨 있다

 [국립 고궁 박물관 소장]


7. 愼其獨 (퇴계 이황 1820~1898)


'홀로 있을 때 더 삼가고 조심한다'는 뜻이다.
퇴계 이황선생이 손수 쓴

'愼其獨 毋不敬 思無邪 毋自欺' 12자로 된 帖 중 하나이다.

 한평생 올곧은 군자의 삶을 산 퇴계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글씨로

서체가 곧으면서도 단정하다. [한상봉 소장품]


8. 大韓獨立血書 (안중근 1879~1910)


1909년 안중근이 연해주에서

왼손 넷째 손가락을 끊어 태극기에 피로 쓴 글씨다.
이날 그는 동지들과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몸 바칠 것을

손가락을 끊어 맹세하는 同義 斷指會를 결성했다.

안중근은 여순 감옥에서 많은 글씨를 남겼는데,

 넷째 손가락이 잘린 왼손에 먹물을 묻혀 낙관을 대신했다.

 이 손바닥 도장은 후세에 애국심의 상징이 되었다.

[독립기념관 소장]


9. 攀伯齋(반백재) (흥선대원군 1820~1898)


진나라 왕부가 부친이 살해되자 무덤 옆에 여막을 짓고

 아침저녁으로 절 하고 옆의 잣나무에 매달려 우니,

 그 흘린 눈물에 나무가 말라죽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여 부모의 선영을

 '반백'(측백나무에 매달림)이라 일컫게 되었다.

국력이 점차 쇠진해 가는 현실에서 조상을 그리워하는

 흥선 대원군의 심정이 스며 있다. [김위영 소장품]


10. 한산도의 노래 (素筌 孫在馨 1903~1981)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가를 최대한 기교를 자제하며

 예스롭고 소박한 멋이 풍겨나게 썼다.

 서예란 말을 창안한 손재형은

 한국 서예 발전에 큰 힘을 쏟은 인물이다.


11. 仁顯王后 한글 편지 (인현왕후 1667~1701)


숙종비 인현왕후가

효종의 넷째 딸 숙휘공주에게 쓴 편지로

 '요즘 겨울이 되었는데 어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라는

 내용이다.

조선중기의 세 왕인 효종, 현종 ,숙종과

그들의 왕비 인선왕후, 명성왕후, 인현왕비의 편지를 모은

신한첩(宸翰帖)에 실려 있다.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게 쓴 글씨는 궁체의 특징이 잘 들어나 있다

.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소장]


12. 구오복 팔천세 (純祖 1790~1834)


순조가 여섯살 정월 어느 날 尹行恁(1762(영조 38)∼1801(순조 1).

 조선 후기의 문신)에게 써준 글씨로,

 '오복을 누리며 장수하기를 기원한다'는 뜻이다.

오복은

장수.

부귀.

건강.

悠好德(덕을 좋아하여 즐겨 행함),

考終命(천수를 누리며 편안히 임종함)이며,

팔천세는

팔천년을 살았던 상고시대의 大椿이라는 나무에 빗대어

장수를 기원할 때 쓰는 말이다.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