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전설 야담

중국의 4대 악녀(경국지색)

목눌인 2016. 11. 24. 17:06

♣ 중국의 4대 악녀(경국지색) ♣

나라를 기울게 할 정도로 뛰어난 미색을 경국지색(傾國之色) 이라 하지요 
중국에는 실제로 4명의 경국지색(4대악녀)이 있었는데
그 첫번째가 매희(말희,末喜) 이고
그 두번째는 달기(妲己)이며
그 세번째는 포사(褒似) 이지요
그 네번째는 하희(夏姬) 이구요 
그럼 여기서 경국지색인 4대 악녀들을 하나하나 만나 보기로해요

1. 매희(말희,末喜)

 


 



매희(말희,末喜)는 하(夏)나라의 마지막왕인 걸왕(傑王,~BC1562)의 왕비 중 한명이었어요
매희는 산동 유시씨의 딸이었는데 걸왕이 정복한 유시씨국(有施氏國)에서
진상품으로 바쳐진 여인이었다고 하지요

 
일설에는 당초부터 걸왕은 매희의 미모에 반해 그를 요구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어요
그래서 절세미녀라는 매희를 걸왕은 비(妃)로 삼아 사랑하였지요
걸왕은 그녀를 왕비로 삼고 나서 날이 갈수록 더더욱 넋을 잃고 빠져들었어요
그러자 매희는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수 있었지요


보석과 상아로 장식한 요대(瑤臺)라는 궁전을 짓고 옥으로 만든 침대에서 밤마다 열락에 빠졌어요
걸왕은 그녀의 소망에 따라 전국에서 선발한 3000명의 미소녀들에게 오색 찬란한 옷을 입혀
날마다 풍악을 울리고 춤울추며 환락에 빠졌지요
그러나 매희는 이내 싫증을 느꼈어요


"이렇게 3천 궁녀들에게 일일이 음식을 나눠주고 술을 따르는 것은 너무 지루하옵니다.
차라리 술로 연못을 만들고 고기로 숲을 만들어
자기 마음대로 마시고 먹을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이까, 폐하?"
"정말 기가 막히게 좋은 생각이오. 그렇게 멋진 잔치를 벌여본 제왕은 일찍이 없었을 것이오."
그리하여 그 유명한 『주지육림(酒池肉林)』의 공사가 시작되었지요


그러나 매희(말희,末喜)는 처음부터 딴 생각이 있었어요
'내 조국이 이 자의 칼아래 유린당하고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 한낱 노리개가 되어 붙잡혀 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원망스럽기 한이 없구나.'하고 생각했다 하네요

주지육림의 공사가 완성되자 연못가에서 술을 마시고 북소리에 맞춰 안주를 먹는
기이한 풍경이 매일같이 연출되었어요
뿐만 아니라 걸왕에게 충성스러운 마음으로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충신들은
모두다 죽임을 당하거나 쫓겨 났지요


충신이었던 관용봉(關龍逢)도 죽음을 각오하고 용기를 내어 간언했으나 오히려 죽임을 당했어요
또 다른 충신이었던 이윤(伊尹) 역시 걸왕에게 간언하려다가 겨우 죽임을 모면하였지요

하나라의 제후이자 제후의 우두머리 격인 방백(方伯)이었던
은(殷)의 탕(湯) 역시 수많은 백성들을 위해 걸왕에게 여러차례 올바른 정치를 진언했지만
오히려 다른 이들처럼 죽임을 당할 뻔하였다가 진상품을 받치고 위기에서 벗어났어요

이 일이 있은 후 걸왕의 옛 부하인 이윤과 탕(湯)을 따르는 제후들이 걸왕을 쫓아낼것을 결의하였고
탕 역시 이를 받아들여 전국에 걸왕 토벌의 포고를 내걸었지요
결국 하나라는 은(殷)나라의 탕왕이 이끄는 군대에 멸망하게 되었어요

 

걸왕과 매희는 생포되어  남소산(南巣山)으로 추방되었고 그곳에서 비참한 생을 마쳤지요
이것을 중국역사에서는 "하상혁명 또는 은혁명"이라 부르지요
그래서 매희(말희,末喜)는 달기,포사,하희와 더불어 중국의 4대 요녀로 불리고 있지요
이들은 모두 나라의 멸망과 관련있는 미인들이지요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몫이라고 했어요
그러나 매희를 요녀라고 하기에는 그녀의 애국심이 마치 중국의 4대미녀 서시(西施)에
비유되는것 같아 조금은 찜찜한 구석이 있지요
그래서 숨겨진 역사는 아이러니가 많다고 했나봐요
그 다음은 달기 이지요

2. 달기(妲己)

 


 



또한명의 경국지색은 은(상)나라 달기(妲己)이지요
달기는 상(商)나라 유소(有蘇) 지금의 해남(海南)온현(溫縣) 부락 출신으로
후에 악명 높은 주왕(紂王,~BC1046)의 비가 되었어요


달기는 중국역사상 가장 섹시한 여인중의 한 사람이며 음탕한 여인의 대명사로 손꼽히는 인물이지요
그녀의 악명은 중국인들의 언어생활을 통해서도 알수 있어요

중국 속어로 "달기정(妲己精: da ji jing)"이란 말이 있는데
그말은 "달기같은 년", "여우같은 년(狐狸精)"이란 뜻으로 음흉하고 음탕한 여인을 욕하는 말이지요
그래서 달기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요녀이자 독녀로 알려져 있어요

기원전 11세기에 있었던 그들의 이야기는
그보다 수백년 이전에 있었던 하(夏)나라 걸왕(桀王)과 매희의 이야기와 너무도 흡사하지요
달기와 주왕이 상(商)나라를 패망의 길로 이끌었다면
걸왕과 매희는 하(夏)나라를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지요
마치 부여의 동명왕신화와 고구려 주몽신화가 비슷한 것처럼 .....

달기(妲己)는 은(殷)나라(BC1562~BC1046) 마지막 군주인 주왕(紂王)의 마음을 사로잡았지요
주왕은 달기에게 흠뻑 빠져 그녀가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다했어요


주왕은 '달기야 말로 진짜 여자다. 지금까지 많은 여자들을 겪어봤지만 달기에 비하면 목석에 불과하다.
정말 하늘이 내려준 여자다.'라고 하면서 달기를 총애했다 하네요

어느날 달기는 "궁중 음악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사오니
마음을 풀어줄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 어떠하온지요?"하고 애교를 부렸지요


주왕도 사실 궁중의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터라
즉시 음악을 담당하는 사연(師涓)이라는 악사를 시켜 '미미지악(靡靡之樂)'이라는
아주 음탕한 노래를 작곡하게 하였고 또한 그것에 걸맞은 '북리지무(北里之舞)'라는
음란한 춤을 만들었지요


또한 달기는 "폐하, 환락의 극치가 어떠한 것인지 한번 끝까지 가보고 싶사옵니다.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고 후회 없는 삶을 누려야 하지 않을까요?"하면서
마침내『주지육림(酒池肉林)』의 공사를 시작하게 만들었으며
공사가 완성되자 그곳에서 음탕하고 질펀한 잔치를 벌였어요

"이 잔치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은 절대 옷을 입어서는 안되며
그리고 남자는 반드시 여자를 업고 과인이 있는 곳까지 와야 한다." 고 주왕의 명이 떨어지자
잔치에 참석한 천여명이 넘는 남녀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의 몸이되어
벌거벗은 남자들은 이리 저리 여자를 붙잡으려 뛰어 다녔고
역시 모두 벗은 여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기 바빴지요


이러한 잔치는 낮에는 잠을 자고 저녁부터 다음날 해가 뜰때까지
계속하여 무려 120일 동안이나 이어졌다고 하지요

그래서 '장야지음(長夜之飮)'이란 말이 생겨 났으며
이는 날이 새어도 창을 가리고 불을 켜 논 채 계속하는 주연(酒宴)을 말하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되는 극히 호사스럽고 방탕한 주연을 뜻하지요

또 달기는 재물을 모으기 위해 백성들에게 세금을 무겁게 부과하여
녹대(鹿臺)라는 금고를 만들었는데
그 크기는 넓이가 1리나 되었고 높이는 1천 척으로 어마어마한 규모였지요

 

그리고 달기의 가장 악랄하고 천인공노할 못된 품성은
주왕을 시켜 잔혹한 형벌을 내리게 하여 생사람을 다 죽게 만들어 놓고
그러한 장면을 보면서 자신의 성욕을 자극시켰다는 점이라 하네요


 

포락지형(炮烙之刑) 이라는 형벌이 그 중 하나인데
『포락지형(炮烙之刑)』이란 구리 기둥에 기름을 바르고
그 아래 이글거리는 숯불을 피워 놓은 후 구리 기둥 위를 죄인들로 하여금
맨발로 걸어가게 하는 형벌이지요


"끝까지 걸어가는 자에게는 죄를 사면해 준다."며
'불 속에 떨어져 죽느냐? 기름 기둥을 무사히 건너느냐?'라는 절박한 갈림길에서
발버둥치는 죄인의 모습을 보고 두 사람은 즐겼다고 하지요


한 사람의 죄수가 붕구덩이에 떨어져 뜨거움에 팔딱팔딱 뛰면서 죽어 갈때마다 
그녀는 성에 굶주린 듯한 신음을 토해내며 주왕의 품에 달라붙어 몸부림쳤다 하네요

그녀는 일종의 새디즘(Sadism: 이성을 학대함으로서 성적 만족과 쾌감을 얻는 변태증)적
변태 성욕자였던 것이 틀림없어요
그렇지 안고서야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런 모습을 보고 즐겼을까요?

 


많은 충신들은 은왕조를 살리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진언하였으나
주왕은 그들을 모조리 죽여 젓을 담그고 포를 떴으며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 죽였다고 하지요
권불 10년 화무십일홍 이라 했던가요?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막강한 권력도 10년을 넘기지 못 한다는 뜻이지요
드디어 주나라의 무왕(武王)이 군사를 일으켜 은나라를 멸망시킬때
주왕은 녹대에 들어가 스스로 불을 지르고 죽었어요


한편, 달기는 사로잡혀 오랏줄에 묶인 채 울음을 터뜨리며 형장으로 끌려갔는데
그 모습이 마치 배꽃이 봄비를 흠뻑 맞은 것과 같았다고 하지요


그리고 처형할때 망나니들이 그녀의 미색에 혼이 빠지고 팔이 마비되어 칼을 들어올리지 못하자
형장의 대장은 90살이 된 망나니로 처형하려 했으나
이 늙은 망나니도 달기를 보자 현기증이 나고 눈이 부셔 목을 칠수 없었다고 하네요
결국 그녀의 얼굴을 보자기로 가린 후 처형했다고 하지요

그러나 ≪세설신어(世說新語)≫ 책에서는 공융(孔融)의 말을 인용하여
주나라 군대가 왕궁에 진입한 후에 주공(周公)이 달기를 취하여 그의 시녀로 삼았다고 하지요


이것은 주나라 군대가 은나라 수도 왕궁에 진입한 이후에 더 이상 달기를 비방하는
말이 없었다는 것을 하나의 방증으로 삼을수 있다 하네요


결국 어떤 측면에서 보면 달기는 뒤에 일어난 왕조에서도 그 미색을 뽑내며 살았을 가능성이 크지만
중국의 역사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그녀는 여전히 악녀와 요녀의 화신으로 여겨지고 있지요
중국고서에서는 달기(妲己)의 미모를 이렇게 형용하고 있어요

구름처럼 검게 늘어진 머리카락, 살구 같은 얼굴 복숭아 같은 뺨,
봄산처럼 옅고 가는 눈썹, 가을파도처럼 둥근 눈동자
풍만한 가슴 갸냘픈 허리, 풍성한 엉덩이 널씬한 다리,
햇빛에 취한 해당화나 비에 젖은 배꽃보다도 아름다워라.'

3. 포사(褒似)

 



은나라에 폭군 주왕(紂王,~BC1046)이 있었다면 주나라엔 유왕(幽王,~BC771)이 있었지요
주왕에게는 달기(妲己)라는 희첩이 있었고 유왕에게는 포사(褒似)라는 희첩이 있었어요

재위 46년 동안 주나라를 반석에 올린 왕이 바로 선왕(宣王)이지요
그의 뒤를 이어 유왕이 즉위한 지 2년째 되던 어느날 지진이 일어나자
당시 백양보(伯陽甫)란 자가
"양기가 자리를 잃고 음기 아래 있으면 반드시 근원이 막히고
그 근원이 막히면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면서 주나라의 멸망을 예언했고
그 시기는 10년이내라고 못 박았지요

그러나 폭군의 기질이 다분했던 유왕은 귀 기울여 듣지 않았어요

재위 3년 되던해에 포사라는 희첩이 생기자 그는 주지육림에 빠져들었지요
포사는 포(褒)나라의 여인이지요
이 여인이 세상에 등장하게 된 계기에 대해 사마천(사마천의 역사서)은 매우 신비스럽게 그려내고 있어요

하 왕조의 뒤를 이어 은나라가 등장하고 다시 주나라에 이르기까지
세나라가 이어지는 동안 베일에 싸여 전해 내려온 한 상자가 있었는데
그 속에는 소장하고 있으면 나라에 길조가 든다는 용의 침이 있었어요


이 상자는 역린(逆鱗)처럼 금기사안은 어떤 경우에도 함부로 만지거나 열어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선왕의 바로 직전 왕인 폭군 여왕(厲王) 이 말년에 이 상자를 열었어요
여는 순간 침이 궁궐의 뜰로 흘렀는데 아무리 없애려 해도 없어지지 않았지요
물론 이런것에 개의할 여왕(厲王) 이 아니었어요


여왕(厲王)이 아녀자들을 발가벗겨 큰 소리로 떠들게 하자 침이 문득 검은 자라로 변해 후궁으로 들어 갔어요
때마침 후궁에 있던 예닐곱 살가량의 어린 계집이 자라와 마주쳤는데
시집갈 나이가 되어 남자도 없이 아이를 잉태하여 그 아이를 낳았던 것이지요
그 후궁은 두려워 아이를 내다 버렸어요

그런데 유왕의 선친인 선왕때 어린 여자애들이 부르는 동요가 있었지요
"산뽕나무로 만든 활과 기(箕,콩대)로 만든 화살 통이 주나라를 망하게 하리라."
마침 이 노래를 들은 선왕이 길에 활과 화살통을 파는 부부가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즉시 죽이라고 명령했지요


이들 부부는 죽기 살기로 도망을 치다 우연히 길에서 한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거두어 길렀어요
그녀가 바로 후궁이 버린 아이였어요
이들 부부는 결국 포나라로 도망가 숨어살았는데 계집아이는 무럭무럭 잘 자랐지요


그러고는 계집의 이름을 포나라에서 성장했다고 하여 '포사'라고 지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여자를 좋아한다는 유왕에게 죄값으로 포사를 바쳤지요
유왕은 포사를 보자마자 반했고 어느새 백복(伯服)이란 아들을 얻었어요


기쁜 마음에 태자 의구(宜臼)를 폐위하고 왕후마저 폐위시키더니
포사를 왕후로 봉하고 백복을 태자 자리에 두고자 하자
주나라 태사 백양(伯陽)이 역사책의 기록을 들어가며 주나라가 망할것을 탄식했지요

절세 미녀였던 포사,
그러나 포사는 비록 유왕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있긴 하였지만 좀처럼 웃는 법이 없었어요
웃을리가 없는 것이지요
포사의 가족들은 유왕에 의해 모두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지요


다른 후궁들은 왕에게 관심을 받기 위해 온갖 아양을 다 떨었지만
포사는 아랑곳 않고 날마다 침울해 있었어요
유왕은 그러한 그녀의 웃음을 보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였지만 그녀는 결코 웃음을 보이지 않았지요

종의 딸로 태어나 유왕의 후궁으로 들어온 포사
그렇지만 그는 일찌기 미모 하나로 사람을 휘어 잡는 법을 체득했지요


그녀는 '공주는 하녀처럼, 하녀는 공주처럼'이라는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석산의 손자병법처럼(손무원작)
유왕처럼 높은 신분의 사람은 마치 자신이 종처럼 다루어야 더욱 끌려 오게 되는 법이지요

그런데 어느날 비단찢는 소리를 듣고 포사가 웃는 것을 본 유왕은 매일 비단 백필씩 가져다가
팔힘이 좋은 궁녀로 하여금 찢게하였지요
그러나 몇일 안가 포사는 또 웃지 않았어요


이 모습을 본 유왕은 포사의 웃움을 보기위해 또 전전긍긍 하였지요
이때 간신 괵석부(虢石父)가 계책을 내 놓았어요
"여산(驪山)에 가서 봉화를 올린다면 그것을 보고 주변의 제후국에서 대군이 구름처럼 몰려들 것입니다.
그들이 급히 달려와서 헛걸음치게 한 다음 그 제후들을 놀린다면 왕후께서는 반드시 기뻐할 것입니다."
이 말을 듣은 유왕은 포사를 데리고 여산으로 가서 봉화를 올렸지요


천자가 있는 주나라에 봉화가 오르자 제후국들이 군을 이끌고 급하게 달려왔지요
그러나 포사의 웃움 때문이라는 내막을 알고 제후들은 마음이 허탈했어요
그런데 포사가 제후들의 화난 모습을 보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간드러지게 웃기 시작했지요


"어머, 폐하 얄굿기도 하셔라"
"그래, 그대가 기뻐하니 아주 좋구나. 그대의 기쁨을 위해 내가 무엇인들 못하리. 천하라도 팔아넘길 것이니라"
유왕은 포사의 웃음 소리를 들으면 정신이 황홀해 짐을 느겼지요


포사의 미소에 넘어간 유왕은 신하들에게 매달 마다 봉화를 올리도록 어처구니 없는 명을 내렸지요
그래서『여산봉화(驪山烽火)』란 고사성어가 여기에서 유래했어요
그러나 봉화를 올리는 숫자가 늘어가자 제후들도 점점 출전을 하지 않게 되다가
결국에는 한명도 나타나지 않게 되었지요

그러던 어느날 유왕은 제후국인 신(申)나라에 유배시켰던 태자 희의구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어요
이에 신나라 신후백이 상소를 올렸지요
"옛날 하(夏)왕조의 걸왕은 말희(末喜)를 총애하여 망했고, 상(商)왕조의 주왕은 달기를 총애하여 망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폐하께서는 포사를 총애하여 적자를 폐하고 서자를 옹립함으로써 부부의 정은 물론
부자의 정도 끊었습니다. 그러니 즉시 명령을 거두지 않으신다면 이 나라도 망하고 말 것입니다."
유왕은 이것을 다 읽어보기도 전에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격분하였어요
그러면서 명령을 다시 내려 신나라 제후의 작위를 박탈한 다음 그를 토벌할 준비를 하였지요

이 소식을 전해들은 신나라의 제후는 호경 부근의 만족(蠻族) 견융부락(犬戎部落)의 추장과 동맹을 맺고
주나라를 공격 했어요
깜짝 놀란 유왕이 봉화를 올렸지만 한명의 제후도 오지 않았지요


주변국 제후들은 또 요망한 계집의 꾐에 빠져 웃기려고 봉화를 올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한 여인의 웃음을 보기 위해 나라를 팔아버린 유왕의 말로는 참으로 비참하기 그지 없었어요

결국 유왕은 신후백에 의해 목이 잘려 나갔지요
한편 포사도 견융족의 추장에 잡히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어요
이 후로 중국은 견융족을 몰아내기 위해 진, 위, 정 나라의 제후들이 군을 이끌고 와서 평왕을 세우지요

 

그런데 평왕도 여색을 즐기고 포악했어요
결국 얼마 가지 않아 주나라는 망하고 춘추시대가 시작되지요
한 여인으로 인해 거대국가 주나라는 멸망하게 되었어요
다음은 마지막으로 하희(夏姬)라는 미녀에 대하여 알아 보기로해요

4. 하희(夏姬)

 



삼부이군일자(三夫二君一子)를 죽게 만든 경국지색 정나라의 하희(夏姬)는
중국 춘추시대 정(鄭)나라 목공의 딸로 여러 고사성어를 낳을 만큼 아름다웠다고 하지요
하희는 열다섯때 꿈을 꾸었는데
천신이 나타나 소녀채전술(素女采戰術) 혹은 내시법(內視法)이라는
특이한 비법을 알려주어 영원히 젊음을 유지할수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어요
그래서 하희가 세번 젊어졌다는『삼소(三少)』라는 고사성어가 나오게 되었지요

하희(夏姬)는 처음에 자만(子蠻)이라는 대부와 결혼했는데
자만은 넘치는 색욕의 하희를 감당치 못하고 요절하고 말았지요


그후 정영공(鄭靈公)이 되는 이복 오라비 자이(子夷)와
또 다른 왕실 총각 자공(子公)과 놀아나지요
뒷날 이 문제가 발단이 되어 자공이 정영공을 죽이고 정양공(鄭襄公)을
옹립하는 사태가 벌어 지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공식적으로는 과부였던 하희는 진(陳)나라 대부 하어숙(夏御叔)에게 시집을 갔어요
그래서 하어숙(夏御叔)의 안사람이라 하여 "하희(夏姬)"라고 불리게 되었지요
기원전 617년 하희는 아들 징서(徵舒)를 낳았어요


대략 이 무렵이 17세쯤 되었던 모양이에요
그러나 남편 하어숙도 버티지 못하고 죽게 되지요
그러자 바람둥이 대부 공녕(孔寧)이 선물 공세를 펼치며 집적대기 시작하여
결국 관계를 갖는데 성공하였어요
공녕은 하희의 집에서 속옷 하나를 훔쳐와 입고다니며 자랑을 하고 다녔어요

그러자 남몰래 하희를 연모했던 대부 의행보(儀行父)역시 선물 공세로 관계에 갖게 되지요
관계후 의행보는 공녕이 속옥을 받았다고 자랑한다며 나에게도 정표를 주기를 청하였어요


그러자 하희는 공녕은 훔쳐간 것이라며 적삼을 내어주게 되는데
시기심에 불탄 공녕은 진나라 왕인 영공(靈公)에게 하희를 소개시켜 버리지요
어이어이 진영공도 속옷을 선물로 받아와서는 두 신하를 불러다가 힐난하는데
신하들의 답변은 이러 했지요


"맛 좋은 음식이 있으면 임금님께 바치기에 앞서 신하가 먼저 맛보고 올리는게 도리인 것이지요”
그래서 셋은 날짜를 정해 놓고 서로 안 겹치게 방문키로 하였지요
진영공의 이 행각은 얼마나 유명한지, 심지어 시경에 시로도 남아있어요

胡爲乎株林 從夏南 주림에는 왜 가는가? 하남을 만나러 간다네
匪適株林 從夏南    주림에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남을 만나러 간다고 하네
駕我乘馬 說于株野 나도 네 필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가서 주림의 들에 묵으리라
乘我乘駒 朝食于株 나도 네 필 망아지가 끄는 수레를 타고 가서 주림에서 아침을 먹으리라.

그러나 정 나라에 이런 막장 대부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요
근엄한 대부 설야(泄冶)가 군신 간의 이런 음란한 행동을 중지해야 한다고 힐난하자
"모든 사람이 내 불선(不善)을 안다 해도 두렵지 않지만 설야가 그것을 안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라며
영공은 자객을 보내 설야를 죽여버렸어요

 


세월은 흘러 기원전 599년 하희의 아들 하징서가 18세가 되어 아버지의 지위를 물려 받았지요
그런데 세상은 온통 세 남자와 붙어먹는 엄마 욕으로 시끌시끌 했어요


더구나 이 세남자(공녕,의행부,진영공)가 모이면
하징서가 너를 닮았네, 아니 나를 닮았나? 해가며 놀고 있었어요


화가난 하징서는 진영공을 초대한 뒤에 활잡이들을 마굿간에 숨겨두었다가 쏴 죽였어요
이에 놀란 대부 공녕과 의행보는 초나라로 달아 났지요

거기서 초나라 대부 굴무(屈巫)를 만나지요
굴무에게 얼마나 하희의 방중술을 자랑 했는지 굴무는 필생의 소원으로 하희와 결혼할 것을 다짐하게 되고
굴무는 초나라 장왕(莊王)을 이용해서 진나라를 치게 하였어요


결국 하징서는 초나라 장왕에게 잡혀서 오거분시(다섯수레에 팔다리 묶여 찢어죽이는 형벌)를 당해서 죽게되지요
그리고 초나라 장왕은 하희를 차지해 버리지요
굴무는 닭쫓던 개 신세가 되어 요리조리 머리를 굴렸어요

 

그러면서 요부인 하희를 가까이 하면 나라가 망할수 있다고 진언 하였지요
그러자 정신이 번쩍 든 장왕은 하희를 내놓겠다고 하였지요

그러나 장왕은 하희를 굴무에게 주지않고 노신 양로(襄老)에게 척 앵겨주고 말았지요
못 먹는 밥 재나 뿌리는 심사 였어요
하지만 늙어빠진 양로는 전쟁에 나갔다가 전사하였고 시체도 못 찾았지요
그러자 병사들이 아들 흑요(黑要)를 찾아갔는데 흑요는 나와보지도 않았어요
양로(襄老)의 아들 흑요(黑要)는 하희와 즐기느라 바빴으니 말이지요

굴무는 술수를 부려 하희를 고국인 정나라로 돌려보냈어요
아버지 정목공은 죽었고 동생 정양공(襄公)이 다스리고 있는 중이었지요
그리고 굴무는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척 하다가 정나라로 가서 하희에게 청혼하여
드디어 결혼에 성공 하지요

기록에 따르면 굴무의 딸도 천하절색이었다고 하니 하희의 소생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래서 10번찍어 안넘어가는 나무는 없다 했나봐요 

 

천하절색을 가리키는 말 중 요물딱지라는 뉘앙스를 주는 말로 우물(尤物)이라는 말이 있어요
이 말이 바로 굴무의 딸을 가리키는 말로,
우물(尤物)이 덕과 의를 갖추지 못하면 반드시 재앙을 불러온다고 하는 말이지요
진나라 대부가 굴무의 딸을 아내로 맞으려 하자, "그 여자는 안 된다"라고 하면서 나온 말이지요

여기서 우물(尤物)이란 말은  미혹한 힘을 지니고 있는데
그 에너지가 잘 방출되면 인간세상에 도움이 된다는 뜻이지요


즉, 남자의 능력이 여자의 능력을 압도하면 비바람이 고르고, 단비가 내린다는 것이고
이와 반대로 여자의 능력이 남자의 능력보다 큰 경우에는 분란이 일어나고 혈우성풍이 인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굴무가 하희와 결혼했다고 하자 열받은 인간이 하나 있었는데
그가 바로 자반 장군이었지요
자반은 초나라에 남아있던 굴무의 식솔들을 모조리 처형해 버렸지요
이때 흑요도 같이 목이 달아났어요


그러자 굴무는 분노에 차서 자반에게 편지를 보냈지요
굴무는 벌써 초나라와 가까운 정나라에서 달아나 진(晉)나라 경공 밑에서 일하는 중이었어요
진과 초는 대대로 패권을 놓고 다투는 사이였으니까요.

굴무는 경공에게 오나라를 충동질해서 초와 싸우게 하겠다고 말하였지요
아예 아들 호용(狐庸)을 오나라에 보내 오나라 통치자 수몽(壽夢)에게 가서
전차부대 조종술, 궁병대 사용법과 진법 등등을 모두 가르치고 있었지요

 

이에 힘을 얻은 오나라는 초나라 여러곳을 침공하여 함락 했어요
1년 동안 일곱 군데를 격파하는데 자반 장군은 이 파상 공세를 막을수가 없었지요

문제는 이 사이에 경공이 굴무의 부인 하희를 차지해 버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어요
초나라가 허둥대자 진나라가 떨쳐 일어나 황하를 건너 쳐들어 갔어요


그런데 초나라도 공왕이 직접 출동. 이 전쟁에서 공왕은 한쪽 눈을 잃고 애꾸가 되지요
중국 역사에서는 이 전투를  "언릉전투(彦陵戰鬪)"라고 부르지요

애꾸가 된 공왕은 전쟁에 진 자반 장군을 호출하여 자결하게 만들지요
그래서 열녀전에 따르면 하희는 세번 왕후가 되고, 일곱 차례 제후의 처가 되었고
삼부이군일자(三夫二君一子)를 죽게했다고 하지요


그러니까 자만, 하어숙, 굴무의 세 남편(三夫)과, 정영공과 진영공(二君) 두 임금과
아들 하징서(一子)를 죽게 만들었다는 이야기지요


그래서 중국 역사상 방중술이 뛰어 나기로 하희같은 미색이 없었으며
여러 남자를 농락한 여인또한 하희를 따를자가 없다 했지요

중국의 4대 미인과 4대 요녀는 모두가 한 시대를 풍미한 여인들이지요
가인박명(佳人薄命)이라고 했던가요?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역사는  남는 법이지요
오늘 내가 앉아있는 이 자리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까요?

 
청춘의 시간이 흘러가면 한 줄기 석양에도 가슴이 허해지는 법이지요
살아있는 경국지색의 미모가 세월에 퇴색되는 기분도 묘하네요

 
한잔의 술에 경국지색의 여인들을 떠올려보는것도 좋지 않을까요?


-* 조동렬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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