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이세돌 9단

목눌인 2016. 3. 15. 09:05

 이세돌 9단

바둑은 내 존재 자체다. 바둑으로 내 존재를 증명할 수 있어서 많이 행복했다.”(지난해 9월 중앙일보 인터뷰) 전남 목포에서 배로 두 시간 떨어진 신안 비금도. 이세돌(33) 9단은 비금도의 너른 바닷가를 뛰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 9단은 애기가인 아버지 덕분에 바둑을 알게 됐다. 아마 5단의 실력자였던 아버지는 5남매에게 모두 바둑을 가르쳤다. 5남매 가운데 이상훈(프로 9단), 이세나(월간바둑 편집장), 이세돌 9단이 기재를 보였다.
떠난 건 순전히 바둑 때문이었다. 1991년 이 9단은 제12회 해태배 전국어린이바둑왕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8세 소년이 전국 어린이 대회에서 우승한 건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당시 대회에 참관했던 권갑용 8단이 이 9단을 서울로 데려왔다.

1995년 신안 비금도 고향집에서 찍은 이 9단의 가족 사진. 왼쪽부터 둘째 누나 이세나, 이세돌, 어머니 박양례, 아버지 고 이수오, 작은형 이차돌, 큰형 이상훈. 첫째 누나 이상희는 함께 찍지못했다. [사진 한국기원]
1995년 신안 비금도 고향집에서 찍은 이 9단의 가족 사진. 왼쪽부터 둘째 누나 이세나, 이세돌, 어머니 박양례, 아버지 고 이수오, 작은형 이차돌, 큰형 이상훈. 첫째 누나 이상희는 함께 찍지못했다. [사진 한국기원]
1991년 한·중·일 국가 교류전에 참가한 8세 이세돌
1991년 한·중·일 국가 교류전에 참가한 8세 이세돌

권갑용 도장에서 이 9단은 특출 난 존재였다. 기재뿐 아니라 성격도 남달랐다. 개성 넘치고 자유분방했다. 어린 세돌이 스승의 집에서 선배와 함께 몰래 술을 훔쳐먹다 걸린 건 바둑계 유명한 일화다.

권 8단은 어린 세돌의 말썽을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척할 때가 많았다. 권 8단은 “세돌이는 어려서부터 유달리 천재적인 승부 호흡을 보여줬다. 특히 상대와 부딪칠 때 물러서지 않고 격렬히 싸우는 게 세돌이의 특기이자 장점이었다”고 돌아봤다.

95년 12세의 세돌은 프로 입단에 성공한다. 조훈현(9세), 이창호(11세)에 이어 세 번째 최연소 기록이었다. 하지만 소년의 서울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입단한 뒤 이 9단은 심한 스트레스로 실어증에 걸렸다. 기관지에 염증도 생겼다.

세돌은 아무것도 몰랐다. 부모님은 신안에 계셨고 서울에서 보호자 역할을 했던 형 이상훈 9단마저 입대한 상태였다. 치료 시기를 놓쳤고 기관지 신경은 마비됐다. 한 번 변한 목소리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지금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갈라지는 목소리가 그렇게 생겼다.

천진난만하던 소년이 승부사로 거듭난 건 15세, 부친상을 당하고다. 김성룡 9단은 “이 9단의 어렸을 때 성격은 지금과 많이 다르다. 바둑도 지금처럼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독하고 강해졌다”고 말했다. 이후 이 9단은 국내외 대회를 휩쓸며 이창호 9단의 뒤를 잇는 1인자가 된다.

하지만 바둑대회 시상식장에 돌연 불참하고 별안간 휴직 선언을 하는 등 돌출 행동을 이어갔다. “자신이 없어요, 질 자신이…” “대충 뒀는데 이겼네요” 등 ‘이세돌 어록’을 낳으며 화제를 몰고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늘 바둑으로 자신을 증명했다. 매번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바둑을 뒀다. 안전한 길을 택하는 대신 위태로운 수로 상대를 흔들었다. 바둑이 끝나면 늘 자신이 납득할 때까지 파고들었다. 김지명 바둑TV 캐스터는 “새벽 2시까지 같이 술을 마셨는데 술자리가 끝난 후 자기가 이긴 대국이었는데도 이상한 수가 있다며 끝까지 혼자 복기하는 모습을 본 적 있다”고 회상했다.

물론 슬럼프도 있었다. 2013년 즈음이었다. 이 9단은 지난해 9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딸의 유학을 위해 아내와 딸이 캐나다로 떠나면서 기러기 아빠가 됐고 최대 슬럼프가 왔다”고 했다(올해로 결혼 10주년인 그는 열 살 딸밖에 모르는 ‘딸바보’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그에게 위기는 또 다른 기회였다. “이세돌의 시대가 갔다”는 많은 이의 예상을 깨고 다시 승부사로 우뚝 섰다.
▶관련기사
① 이세돌, 모두 끝났다고 했을 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② 인간만이 펼칠 수 있는 창의력 세계 보여준 승부”
③ “불리한 흑 택한 세돌, 본인이 판 짜겠다는 강력한 의지 표명”
이번 대결에서 그는 ‘프로기사 이세돌’이 아닌 ‘인간 이세돌’의 매력을 여실히 보여줬다. 알파고에 내리 세 번을 진 뒤 “인간이 진 것이 아니라 이세돌이 진 것”이라고 했다. 세간에는 정보의 비대칭성 논란이 나왔지만 역시 “그건 문제가 아니다”고 했다. 사실상 최종 승자가 결정된 후에도 혼신의 힘을 다했고 5국에서는 불리할 줄 알면서도 “흑을 잡고 알파고를 이겨보고 싶다”고 밝혔다. 단지 기계와의 대결에서 극적인 승부를 일궜다는 점뿐 아니라 깨끗하게 패배를 받아들이며 도전하는 그의 모습에 대중이 열광하고 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이세돌 9단=1983년 신안 출생. 95년 입단. 조남철-김인-조훈현-이창호를 이어 국내 바둑 1인자의 계보를 잇고 있다. 연간 상금 역대 1위(2014년 14억 1000만원), 타이틀 획득 47회(국내 29회, 세계 18회). 현재 한국 랭킹 2위(1위는 박정환 9단).


 

당시 서울대 이과는 컴공, 의대, 물리 3과의 차이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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